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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계절 속에서>, 구푸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9월 23일
  • 6분 분량





*죽음 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홍중 씨.

누구세요?

보시다시피.

아, 나 죽었지.

당신의 혼이 너무 아려서 영 지나칠 수 없었어요.



김홍중, 29세. 그게 저의 이름이었다. 생각해 보니 언제 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시간이 멈춘 것마냥 들판을 걸었던 것 같다. 막상 길을 찾아서 확인해 보니 왔던 길을 반복했는데 죽어서 갈증도 없었으니. 내가 왜 죽었나 생각해 봤다. 난 평범했다. 정말? 사실 잘 모르겠다. 20대에 접어들면서 바쁘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소홀하게 여긴 것 같은데. 내 삶의 여유가 없던 것 같다. 나는 꽤나 불쌍했다.



근데 웃기네요.

뭐가요?

죽으면 지옥 간다더니 난 가을 들판에 있네.

배경은 언제든지 바뀌어요. 당신의 심정에 따라.

지금 제 심정은 어떤데요?


허해요. 허하다 못해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 존재하네요. 29세면 삶이 짧았다. 내 삶을 알고 싶으신 거예요? 아뇨. 그냥 당신께 한 가지 주고 저는 다른 망자의 혼을 인도해야 해서요. 그럼 왜 오셨대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당신의 혼이 아리다고. 그 한 가지가 편지랑 볼펜이었다. 그와 동시에 찻집의 배경으로 바뀌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내가 죽고 지금 남는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나요?

당신이 애타게 찾는 사람도 많이 슬퍼할 거예요.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저는 이만 갈 일이 생겨서.



생각해 보면 난 10대의 시점이 있다. 10대는 젊은 기억들이 퍼즐처럼 놓여 있을지라도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 사람 역시 나의 빈소를 찾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을 동경했다. 그는 나에게 가을의 잎새를 닮은 듯한 말들로 안정감을 찾게 해 줬고, 나는 받기만 했다. 더욱이나 선명한 그의 이름은 아직도 내 마음에 품고 있다.


/


[편지를 입력하세요.

당신의 편지는 마음 깊숙이 있는 사람에게 전해질 우체통입니다.]


안녕, 나야. 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나는 어디에 놓여 있을까? 재로 타들어 갈까, 혹은 길을 걷고 있을까. 아마도 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네 꿈을 향해 쫓고 달리고 있을 테지. 오늘처럼.


잎에서 살짝 시린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꽃잎들이 붉은 색깔로 변하기 시작한 것을 보니 가을과 인사할 시간이 온 것 같아. 그곳의 계절은 어때? 아직 여름인가. 내 시간은 아직 너와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봄에서 멈춰 있어.


아마, 우리의 첫봄은 벚꽃이 천천히 떨어질 시점이었어. 너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하고, 그 위에 조끼와 마이를 걸친 너의 모습은 단정한 모습이었지. 반듯한 이름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는 어울리는 너의 모습이었지. 난 그때 뒤늦은 사춘기가 왔었나 봐.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어. 너는 그랬어. 봄을 닮아서 꽃이 핀 시점이 아름다웠어.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스칠 때 너의 미소가 예쁘더라. 너한테 말 한 번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 나중에는 네가 나를 보게 될 테니까. 나중에 너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애써 도망쳤었어. 내가 겁이 없었다면 널 한 명의 학생으로만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나를 기다렸어. 그래, 너는 끝까지 다정했어. 푸르던 하늘에 그늘진 나무 자리에서 날 기다리며 외친 내 이름. 처음 알았어. 너는 따뜻하구나. 그래서 난 너의 손을 잡은 거야. 너를 믿을 수 있었으니까.


‘홍중아, 안녕. 또 보자.’


또 보자는 그 하루하루를 기다렸어. 싫지 않았어. 어느 때나 다름없던 내 하루에 너의 이름 세 글자가 개입된 게 신기해.


아, 맞다. 그 고양이 알지. 우리가 정한 이름, 제로. 지금 제로 내 옆에 있다. 너 없다고 울기 바빠. 어떻게 달래 줘야 할지 모르겠다. 달래는 건 네 전문인데. 너와 가까워지고 한 달이 지났을 때쯤 벚꽃은 지고 갈 때 후문에서 그 고양이를 만났지. 나보다 네가 처음 먼저 그 고양이를 알렸지. 사실 너 아니면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너와의 추억들이 참 많아. 그 고양이도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없었을 거야. 너는 나와 약속했었잖아.


‘이 고양이는 우리 둘만 알고 있자. 다른 누군가도 알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어.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까워짐과 동시에 하늘은 푸르지 않고 흐리기만 한 시점이 많았더라. 나는 원래 비를 싫어해. 비 맞으면 찝찝하고, 젖는 것도 싫어해서 급하게 횡단한 나에게 네가 온 순간부터 계절의 변화가 왔어. 나 더는 여름이 싫지 않아, 성화야.


소나기 내려서 우산도 없었던 날에 너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향이 났어. 너는 내게 우산을 쥐며 말했었지. 감기 걸리니까 우산 쓰고 가라는 너의 손짓. 근데 나는 다 알고 있었어. 내가 다 알면서도 그대로 가방을 머리에 두고 집까지 뛰었다는 사실을. 너는 그리고 감기를 앓았어. 용기가 없던 내게 처음 발걸음을 돌린 곳이 너였다니. 왜인지 그때는 너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아픈 너를 보니까 말할 수 없는 내 진심이 나도 모르게 나온 것도 모두 다 너였나 봐. 지독한 여름에 이름을 외칠 줄이야.


‘성화야.’

‘응.’

‘아프지 마.’

‘홍중아.’

‘응.’

‘너 오니까 아픔도 다 사라졌어.’


바보야, 앞으로는 우산 잘 챙기고 다녀. 감기 옮기겠다. 너보다 몸 튼튼해. 귀여워.



가을이 왔어. 난 내 계절에 가을은 없었는데, 너의 시간은 가을을 참 좋아했던 거 같아. 그래서 나도 가을을 좋아했어. 너와 의자에 누워서 추억을 만드는 일들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었어. 그때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을 기억해.


‘저 꽃들도 겨울이 되면 지겠지만, 우리 홍중이는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왜?’

‘너를 만나고나서 죽어가는 꽃들이 피기 시작했거든.’


그러니까. 너는 지지 말고 예쁘게 피어야 하니까.

네가 꽃이고, 나는 그저 꽃밭을 걸어가는 하나의 행인일 뿐이야. 너는 나의 잊혀질 수 없는 꽃이자 계절이야.


‘홍중아.’

‘응.’

‘너를 좋아해.’


너를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이렇게 담아서 고백해.

나 역시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어. 내가 웃는 모습을 좋아한 너처럼 나 역시 네가 웃는 모습이 좋아. 다음 계절에도 함께할 수 있도록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겁 없이 뛰어들 거야. 참 많이도 어렸어. 열여덟의 사랑을 너와 함께 걷는다면 난 무섭지 않았거든. 뭐가 좋다고 너와 있는 시간들이 짧다고 느껴져. 네 하루와 내 하루를 합쳐도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야.


너는 늘 다정해서 다정함에 약했던 나는 네 모습만 보면 울렁거리고 떨리는 심장이 주체를 할 수가 없었어. 너는 그 무기를 삼아서 매일 나와 함께 있고 싶었어. 싫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냥 내가 감히 너의 사랑만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대한 불안함만 가득한 채.


저기 달 좀 봐. 보름달이 참 예뻐.

응. 예쁘다.

나는 오늘 보름달에 소원을 빌 거야.

뭐라고?

그건 비밀이야.

그럼 나도 비밀이야.

그냥 수없이 많은 별중 하나를 너에게 담아 주고 싶다고 했어.


너의 눈동자는 가장 반짝이는 별들 중 하나로 눈부셨었다. 내 소원은 그랬다. 애석하게도 너에게 전할 수 없었던 말이 있다면 욕심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좋아하고 싶다고. 나의 별에게 그렇게 전하고 싶다고 나는 속으로 외쳤어.



끝무렵인 겨울이 왔어. 이 겨울이 지나면 사계절을 함께 보내겠지만, 나는 어렸고 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너를 밀어냈을 때 너는 다 괜찮다며 또 속아 버린 내 모습을 보고도 말없이 안아 주었지. 그때 나의 겨울은 시린 겨울이 아니라, 전보다 다른 온기의 계절이었어.


우리 같은 길을 걷자. 내가 도와줄게.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어. 나는 아직 어리고, 사람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 그런데 너와 걷는다고 하면 덜 두려울지라도 나설 수가 없어. 그게 너와 내 차이지 않았을까.


성화야, 나는 너의 1년을 보면서 기억하고 추억하며 이렇게 적게 되었지만 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행복할 때 그때도 그 사람에게 그렇게 전해. 꽃은 너 하나고, 별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별을 주고 싶다고.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처럼 널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온전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


봄에는 벚꽃을 보러 가면서 함께 손을 잡아고 걸어가.

여름은 어떤 비라도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가을은 변하지 않는 너의 따스함을 알 수 있도록 해.

겨울은 절대 무너지지 말고 날이 시리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너의 사계절을 보내면 나는 그것 하나면 충분해.


왜인지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아. 행복했던 시절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미련이 없어서 그런 건지. 나의 시간이 멈춰서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나는 길을 걸었던 건지. 아까 사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생각했어. 나는 누군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 누군가가 너였구나. 이제는 신호도 받을 수 없고, 너에게 내 말과 모습은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멀리서 너를 기억하면서 갈게.


이 말을 보게 될 때쯤에 나를 알게 될까. 네가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해. 나는 너의 상대로 적합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멀어지게 된 것도 내가 다 감당하고, 또 너에게 모질게 뱉었던 말들도 짊어질 테니 너무 슬퍼하지는 마. 전할 수 없는 진심을 그때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비록 이 삐뚤삐뚤한 글씨체가 아직까지도 성인이 되어 바뀌지 않았지만, 우연히 너를 마주친 봄에서 너 없는 몇 번의 계절을 지나도 변치 않는 내 진심을 이렇게 썼어.


이 바람이 지나가면 나의 잉크도 닳아 사라지겠지. 너의 결말은 부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원해. 불행은 잠재워질 거야. 난 내 짧은 생에 너를 알 수 있어서, 너를 좋아할 수 있어서, 겁많은 나에게 따스함을 준 너에게 다행이고 고마웠어. 오늘도 잘 자. 이제는 정말 안녕.


성화야.

박성화.

너에게 이 편지를 전할 수 있어서 난 기뻤어.




배경이 또 다시 바뀌었다. 보름달이 뜨기 시작했다. 나는 길을 또 다시 도착지 없는 곳으로 걸었다. 너는 나를 찾지 말아야 한다. 분명 나를 못 찾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라는 말보다, 안녕이라는 두 글자로 헤어짐을 두고 만났으니까.














- 작가의 말


먼저 해석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사후 세계에서 이승으로 전할 수 있는 우체통은 죽은 시점부터 10년이 지나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형태와 목소리를 흐릿한 부분만 남게 되니까요. 홍중은 늘 불안했던 사람이지만, 성화는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홍중은 겁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었습니다. 늘 도망치기 바빴던 홍중에게 성화는 절대적 안식처였어요.


실제로 둘은 만남을 두고 직접적으로 사귀지는 않았고, 마음만 호가인한 거죠. 이별의 과정도 홍중이가 천천히 이별을 두고 정리한 것입니다. 어차피 만남은 이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가을 하면 사실 저는 독서의 게절이고, 편지라고 생각해서 홍중의 시점으로 적게 되었어요. 서툴기만 한 홍중이의 표현 방식은 대체로 글로 표현을 합니다. 성화는 말로 하지만요.........

보통 저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 글로 표현하고, 홍중의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적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아끼고 아낀 내용을 합작에 제출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들 성홍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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