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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찌질이들을 위한 연애 지침서>, 쿄코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12월 22일
  • 9분 분량


이 찌질이들아 그럴 거면 헤어져.




성화와 홍중을 보고 누가 뱉어낸 짜증. 그때는 '헤어져'에 꽂혀서 뭐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찌질이'에 포커를 맞추는 게 맞았다. 어디 가서 상남자, 쾌남, 진품 이런 라인업에서 빠진 적 없던 둘은 괴상하게도 둘이 만나니까 마이너스 버프 먹어서 울트라 찌질이들이 됐다. 지금에서야 인정한다. 박성화를 사랑한 김홍중은 찌질했고 마찬가지로 김홍중을 사랑한 박성화는 찌질했다.


둘의 고질적 문제에 병명을 붙인다면 아마 도끼병. 홍중이가 나 별로 안 사랑하는 것 같아. 박성화 바람 피우는 거 아냐? 서로 바라는 사랑의 역치는 높은데 그걸 티 안 내니 문제였다. 병은 숨길수록 곪는 법이다. 대체 왜? 아니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티를 좀 내. 근데 둘은 죽어도 그러질 못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내 더럽고 추악한 마음을 어떻게 성화(홍중이)에게 보여줘. 그럼 우리한테는 보여줘도 되고? 둘의 겹지인이라는 이유로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동생들만 짜게 식을 뿐이었다.





이런 사람들 특징: 결국 헤어짐





헤어진 후로 벌어진 문제에 병명을 붙인다면 아마도 상사병. 헤어진 뒤로도 시름시름 앓던 둘은 어느 단계에 이르렀다. 박성화는 김홍중을 제 삶에서 도려내기로 결심하고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홍중이? 그게 누군데? 천연덕스럽게 말이다.


반면 홍중은 그렇지 않았다. 박성화가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열리지 않았던 마음의 문은 역시나 닫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아니 연 건 박성화인데 왜 내가 닫아야 하냐고. 박성화가 돌아오길 내심 기대하며 추운 겨울바람 다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둔 홍중은 결국 감기에 걸렸고 병에 걸려 시들시들해져갔다. 겉으로는 괜찮은데 마음은 기침의 연속이다. 홍중은 카카오톡 맨 위 상단에 고정해둔 박성화와의 톡방을 헤어지고 나서도 풀지 않았다.


헤어진 지 벌써 1년째. 다시 돌아온 겨울. 홍중은 레고 매장을 서성이는 어른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성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연락을 걸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딱히 보낼 안부가 없었다.





[잘 지내?]

잘 지내겠지. 헤어진 뒤로 1년 동안 프사를 총 21번 바꾸는 앤데.

[보고 싶어]

너무 매달리는 것 같은데...

[만나자]

우웩...





어쩌지. 결국 마음 먹었던 것이 무색하게 포기하고 말았다. 어디 가서 음악하고 가사 써서 밥 벌어먹는다는 소리 절대하지 말아야지. 이런 거 하나 멋들어지게 적지도 못하는데 뭔. 홍중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위스키를 떠올렸다. 자괴감에 울렁거릴 땐 식도를 태워서 잠재우는 게 마음이 편했다.


혼자 마시는 술이 맛있을 리도 없고 재밌을 리도 없다. 홍중은 알딸딸함에 천장을 쳐다보다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했다. 걔는 왜 나를 이렇게 만들고 떠났담. 침대에 누워서 박성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취해서 힘이 없을 때면 파고들어 와 홍중아 속삭이며 옷 밑에 손을 넣었었지. 야 너는 내가 취할 때마다 그러냐? 양심 없네. 다음 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면 포장해온 콩나물국 뜯으며 얌전할 땐 그때밖에 없는데 어떡해 대답하던 박성화. 이제는 맨날 얌전해 줄 자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헤어진 후로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했는지 여태껏 연락 한번 없다. 박성화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보낼 사람이 있을까. 작년에는 없었을 거다. 크리스마스 3일 전에 헤어졌으니까. 갑자기 누군가와 트리를 보고 좋아하고 케이크를 자를 성화를 생각하니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





나는 너무 밉다 네가...





홍중은 성화와 어떻게 헤어지게 됐는지 떠올린다. 조금 조금씩 배려랍시고 양보해오던 것들이 앙금이 됐을 무렵 넌 그게 나한테 할 말이야? 로 시작한 다툼은 꽤 커졌다. 홍중은 성화가 늘 할 말이 있으면서 숨기는 게 그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홍중아 불러놓고 입만 달싹이다 아니야, 하던 박성화. 왜 말해봐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애써 갈무리하는 것. 그게 꼴보기 싫어서 더 모른 체 했다. 이건 솔직히 자기가 못됐다는 걸 안다.


연애 초기에나 할 말 못 할 말 가려 했지 말기 가니까 그런 거 없었다. 나 그럴 때마다 서운해. 서운하다고 홍중아. 어쩌라고 그러면 그럴 때마다 제대로 말을 하든가 아니면 안 서운하게 할 사람 만나든가. ...헤어지잔 소리야? 미쳤냐? 그냥 다른 사람 만나서 데이트만 하라고. 제 입으로 지껄이고 있는 게 저도 이해 안 갔는데 박성화는 오죽 했을까. 허. 어이없다는 단발의 코웃음. 박성화는 계속해보라는 듯 빤히 지켜보다가 알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 박성화는 정말 보란 듯이 소개팅을 나갔다. 소식들은 홍중은 양말 길이가 다르다는 것도 모른 채 신고 달려 나갔다. 쓴 것도 못 먹으면서 아메리카노 시켜놓고 늘 오퍼시티 30으로 존재하던 사투리도 교정한 채 아 진짜요? 대꾸하며 수줍게 웃고 있는 박성화를 데리고 나와 눈인지 비인지 오는 거리에서 대판 싸웠다. 데이트 하랬지 소개팅 하랬냐고 윽박지르면 박성화는 네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성질이냐고 같이 소리쳤다. 흠 보여주기 싫어 감췄던 게 결국 밑바닥까지 내보이게 지경에 이르렀다. 박성화는 김홍중 속을 박박 긁어댔다.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루는 머리채를 잡았고 하루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느 날엔 죽고 못 살 듯 혀를 섞었다가 저녁엔 또 싸웠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3일 전. 호텔도 케이크도 트리도 다 사놨는데 헤어졌다. 호텔은 김홍중이 갔고 케이크는 박성화가 먹었다. 트리는 다행히 어느 허


브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길래 네이버 톡톡으로 취소해달라고 하니 오지도 않고 반송됐다.





지금 생각해도 더럽다. 어쩜 이렇게 더럽게 헤어졌지. 연락 안 할 만도 하다. 그래도 나는 네가 보고 싶은데 어떡해. 너만큼 사랑한 사람 없는데 어떡하냐고. 홍중은 정신을 잃기 전 여전히 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성화에게 카톡을 보냈다. 마인드 셋. 나는야 전남친 렉카.





나 아파 성화야





멋들어지는 말은 잘 모르지만 걔가 뛰어올 수밖에 없는 말은 너무 잘 아는 홍중이었다.









헤어진 찌질이들을 위한 연애 지침서

박성화 김홍중




홍중의 예상과 다르게 성화는 반응하지 않았다. 분명히 한숨 자고 일어나면 땀에 젖은 박성화가 허겁지겁 달려와 문을 두드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바깥 공사장 소리만 홍중을 깨울 뿐이었다. 어이가 없네. 내가 아프다는데. 옮는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냈을 땐 KF94 마스크 두 장 끼고 옆에 붙어서 간호하더니 이젠 헤어졌다고 개무시하는 건가 싶다. 근데 생각해보면 맞지. 나한테 죽고 살던 박성화가 없다는 게 실감이 난다. ...하지만 부활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홍중은 오기가 생겨 성화를 더 자극 시켜보기로 결심했다.





연락해서 미안해

너밖에 생각 안 나서 그랬어





보내놓고 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더니 1이 사라지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알았어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몰랐는데 박성화한테 세 글자에 사람 무너지게 하는 재주가 있네. 홍중은 그렇게 생각했다.







*








김홍중과 연애하던 때를 박성화는 생각해본다. 나만 매달리는 것 같고, 나만 간절한 것 같고, 사랑해 한 마디 듣는 게 너무 어려워서 짜증이 났다. 김홍중 주위의 사람들이 싫었다. 쉽게 김홍중의 시간을 얻는 작업실 형들, 다정한 말로 위로 받거나 혼나는 후배 동생들. 나중엔 김홍중이 싫었다. 나한테도 많이 웃어줘 보고 싶다고 해줘 너 없이 못 살겠다고 해달라고. 사랑도 저만 받고 혼나는 것도 저만 혼나고 싶었다.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곪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김홍중과 싸웠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까지 미웠다. 왜 말을 해야 알아. 아니 사실 알고 있을 거다. 외면한 거겠지. 내가 아는 김홍중은 그랬다. 흥분해서 맘에도 없는 소리 내뱉는 김홍중을 긁어놓고 싶어서 홧김에 소개팅을 나갔다. 정신없이 뛰쳐나와 양말 길이가 다른 것도 모르는 홍중이가 귀여웠다. 너 때문에 일상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쾌감이 들었다.


한 번 하면 끝까지 가는 성격 둘 다 못 버리고 크리스마스 3일 전에야 끝을 봤다. 헤어지자고 하는 홍중이한테 싫다고 말을 못했다. 그새 성화도 자존심만 세져서. 네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잡는 것도 너여야지. 솔직히 나만 한 사람 너 두 번 다시 못 만날 텐데. 하지만 역시 홍중은 성화를 잡지 않았다. 큰맘 먹고 예약한 비싼 케이크는 우습게도 맛있었다. 이 맛있는 케이크가 나중에는 짠맛이 났다. 눈물 멈추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울었다.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하루에 하나씩 도려내듯 지워가다 보니 벌써 1년. 보고 싶었지만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은 끝까지 안 들었다. 대신 걔한테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할지 1안부터 24안까지 짜놨다.



[잘 지내?]

잘 지내는 거 티 내려고 어디 갈 때마다 프사 바꾼 거야.

[보고 싶어]

그래? 나는 별로.. 오늘 시간 있는데 볼 거면

[만나자]

너가 만나달라고 하면 내가 만나줘야 돼?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놨는데 김홍중은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연락 한번 없었다. 그래서 더 얄미웠다. 김홍중 진짜 싫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나 아파 성화야





이런 연락이 온 박성화의 심경이 어땠을 것 같아? MBTI ENFJ 나오는 박성화는 패배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대비하고 대비한 24안 중 저 말은 없었다.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한순간 문제가 바뀐다. 답장 해야되나. 하지 말아야 되나. 아프다고? 얼마나 아픈데? 아 이거 페이크일 수도 있겠다. 방 안을 서성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정우영에게 물어봤다.





[야 내 친구 전남친이 지금 1년만에 아프다고 보냈다고 난리났는데 어떻게 답장해야될까?]

[홍중이형 어제 만났는데 멀쩡했음요]




머쓱해져서 웅 알겠어 라고 답장 보냈다. 근데 너 왜 홍중이랑 만나? 넌 내 편 아냐? 촉새처럼 보내놓으니 진짜 차단한다 이것만 돌아온다.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릇이 없다. 그때 홍중이 말 듣고 기강을 잡아 놨어야 했는데... 하... 홍중이는 뭔 생각일까... 1년째 홍중이 홍중이 홍중이 하는 자신이 너무 짜증이 나서 눈물이 찔끔 났다.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나니 알림이 몇 개 더 쌓여있다. 나 밖에 생각 안 났다고 하는 말에 흥분해서 절대 읽지 말아야지 했던 것이 무색하게 바로 들어가 캡처를 갈겼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스스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성화는 손을 벌벌 떨며 답장을 쳤다.





알았어






솔직히 좀 찢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헤어진 연인은 대개 어디서 재회할까. 생각보다 드라마틱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


다. 겹지인의 결혼식 같은 곳에서 만난다. 어찌어찌 테이블이 겹쳤는데 우리 둘 헤어졌다고 남의 결혼식장에서 미묘한 표정 지으며 불편하게 앉아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들 이미 불편한 옷 입고 앉아서 뷔페 먹고 있고 또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고 얼싸안고 인사하고 사진 좀 찍으니 돌아갈 시간. 답례품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들 뚜벅이로 온 친구들에게 서로 태워줄 테니까 타고 가라고 그런다. 홍중 역시 예의상 한 번 물어보았다. 성화가 이대로 냉큼 물어주면 더 좋고. 가는 길에 태워다 줄까? 성화는 아니야 됐어 하다가 한 시간 반 정도 돌아갈 생각에 좀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됐으니까 타. 응...


거리를 메운 차들. 옛날엔 돌아가는 길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좋았다. 지금은... 잘 모르겠네. 신호대기를 받는 와중에 때 아닌 폭설이 귀갓길을 메웠다. 이건 보나 마나 쌓이는 눈이다. 안 그래도 막히던 도로 위 차들이 기어가기 시작했다.





"한참 걸릴 것 같은데 근처 역에 내려줄까?"

"어 어..."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렇지..."

"아프다고 보냈는데 너 읽지도 않더라."

"그날 좀 바빴어."

"아 그래..."





나 왜 눈치 보냐? 서로 다른 창밖을 본다. 옛날에는 어떻게 대화했더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회가 떠나가기 전. 다시 붙을 가망이 없다. 대체로 포기하는 순간이 기적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하던데. 홍중은 차선을 변경하며 이백미터 남짓 남은 도로에서 고민했지만 역시나 성화를 꼬실 방도는 없었다. 옛날에야 목덜미 잡고 입술부터 잡아 누르면 자연스럽게 풀어졌을 텐데. 오 해볼까? 하지만 여전히 용기는 없다. 성화를 자주 내려주던 출구 옆에다 차를 댔다. 잘 가. 하려는데




"여기 출구 공사한다고 폐쇄했어."

"아... 그러면 저기서 유턴해서 반대편에 내려줄게. 추우니까 내리지 마."

"아냐."

"어 응."

"...너 오늘 시간 돼?"





어 돼... 기적이 갑자기 눈앞에 자기 모습을 들이밀려고 한다. 홍중은 자신의 반사신경이 이렇게 빨랐는지 스스로 놀랐다.







너저분한 홍중의 집에 성화가 눈살을 찌푸린다. 니트 이렇게 걸어두면 늘어난다고 했잖아. 돌돌이는 뒀다 뭐해 써야지. 홍중아 몬스터가 주식되면 몸 망가져. ...내 칫솔은 왜 안 버렸어? 아 잔소리 심하네. 데리고 오지 말 걸. 거하게 먹고 나온 탓에 저녁 먹기에도 뭐하고 차 가지고 나와서 카페 가기에도 뭐해서 홍중의 집으로 왔더니 상황이 더 묘해졌다. 성화는 외투만 벗어둔 채 습관처럼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홍중은 아일랜드 식탁에 기대 앉아 엄마가 방 치워주는 거에 훈수 두는 중학생 마냥 치우려고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 연락 한번 없더라."

"너도 그랬잖아."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럼 내가 연락하냐?"

"왜 화를 내?"

"내가 언제 화를 냈어."

"지금 내잖아."


"야이씨... 왜 싸우는데."

"..."





찌질함이 끝이 없다. 적막 사이로 홍중이 눌러놓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원두 가는 소리만 들린다. 주인이랑 쏙 빼닮아서 향긋한 냄새 풍기는데 정작 맛은 쓰기만 했다. 핫초코 좀 타줄까? 아냐 됐어 이것만 마시고 갈게. 김홍중은 밀고 당기는 법을 모른다. 멱살 잡고 질질 끌며 뒷걸음질 치는 방법만 알지. 근데 박성화는 그런 김홍중이 너무 좋아서 응응 홍중아 이렇게 잡으면 더 편해 하고 더 긴 옷깃을 내밀었다. 지금도 똑같다. 요망하게 자기 집 데려왔으면서. 나한테 마음 남았다고 해야지. 왜 시비부터 걸어? 성화는 이래서 헤어졌구나 다시금 깨닫기만 했다. 집도 치워줬는데. 또 울컥할 것 같았다. 커피만 마시고 진짜 돌아갈 거라고, 김홍중에게 세 번째 기회란 거 절대 주지 않을 거라고, 이번에는 차단까지 꼭꼭 해서 괜한 연락 받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었다. 쓴 거 참고 커피를 원샷했다. 싱크대에 컵 올려두고 급하게 외투를 입으니 홍중이 또 쫓아온다. 갈 거야? 묻는데 성화는 그 순간 진절머리가 나서 잘 신겨지지 않는 구두를 억지로 구겨 신다가 휙 돌아 내질렀다.






"홍중아 마음 있으면 좀 잡아봐. 기회 주잖아."






도망치듯 나오려는데 김홍중이 뒷덜미를 잡는다. 성화가 잊고 있던 사실. 홍중은 생각보다 힘이 좋았다. 질질 끌려들어 온 성화를 현관에 내팽개치듯 밀어 넣는다. 홍중아, 나 신발, 신발만. 누가 봐도 빡친 표정의 홍중이 쉬익 대다가 내뱉는다.


"눈 많이 오니까 자고가."






예상치 못하게 홍중이 기회를 화끈하게 잡아버린다. 그 위압감에 성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고 갈게...














어색해서 미칠 것 같은 정적. 씻고 홍중이 준 옷들로 갈아입은 성화가 어색하게 소파에 앉았다. 사귀던 시절 머리 말려주는 걸 좋아했던 성화를 기억하고 홍중이 드라이기를 들었다. 위이이이잉. 축축이 젖은 머리가 홍중의 손길에 점차 말라간다. 다 하고 나니까 뭐하기가 그렇다. 티비를 보려고 틀었는데 얼마 전 고장 났던 게 생각이 났다. 화면의 반만 나오는 걸 성화가 애써 열심히 보고 있다. 홍중은 그 옆에 앉아서 애꿎게 유튜브만 뒤지다가 넌지시 물었다.






"...야 할래?"

"..."

"...내가 대줄게."

"...홍중아 그... 원래도 네가... 대주는 쪽... 이었지 않아?"








어색한 기류를 타파하는 법. 사실 둘 다 잘 몰랐다. 이렇게 구는 게 서로가 처음이니까. 홍중은 꼬리 물며 싸우는 거 보다 차라리 시원하게 물 한 번 빼는 게 도움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름 좀 용기 있게 말했는데 받아친 멘트가 영 구렸다. 성화 역시 제가 말해놓고도 쑥스러웠는지 애꿎게 엄지손가락만 만지작만지작 거린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성화에 홍중은 망설임 없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속옷과 바지를 한 번에 내리고 발기하지 않아 축 늘어져 있던 것을 한입에 물었다. 솔직히 역하다. 사귈 때도 잘 안 해주던 건데. 하지만 홍중은 그만두지 않았다. 습윤한 점막에 귀두를 부비고 빨대 빨듯이 빨아 당기기도 했다. 기둥 밑을 고양이 물 먹듯이 핥기도 하니 심지가 점점 굳어온다. 머리 위에 밭은 숨이 내려앉았다. 목구멍까지 깊게 빨아들이자 성화가 사정감이 드는지 몸부림치며 홍중이 쥐어 버티고 있던 허벅지를 모으려 든다. 어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벌려내자 성화는 시뻘게진 얼굴로 손을 모으고 깍지를 꼈다. 몸을 바르작 거리길래 고개를 빼자 선단에서는 프리컴이 줄줄 흘렀다. 성화가 뭘 좋아했더라. 혀를 빼내어 귀두에 댄 채로 몇 번 훑어주니 기다렸다는 듯 정액을 픽픽 쌌다. 손바닥에 싼 걸 뱉자 안절부절 해했다. 괜찮아. 싸라고 한 거야. 하니까 성화는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홍중아 콘돔 있어...? 사둔 거 있을 걸. 유통기한 안 지났을 거 같은데...




젤로 치덕치덕해진 내부를 성화가 뚫듯이 밀어 넣었다. 풀렸던 구멍에 성화의 것이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내부가 경련하듯 수축했다. 빠듯하게 조여오는 것에 성화가 깊게 숨을 내쉰다. 잠시 익숙해질 시간을 주려고 하는데 오히려 홍중이 박으라고 안달이었다. 힘도 못 빼면서... 고집 부리지 말라고 한 번 세게 박아넣자 아으, 하고 홍중이 작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해줘? 느끼는 곳을 얕게 박자 배가 당기는 지 근육이 서는 게 보인다. 아 좀, 천천히, 천천히 해... 홍중이 앓자 성화가 속도 줄이고 이번에는 느릿하게 선단까지 뺐다가 한 번에 쑥 박아넣었다. 그러자 잔뜩 짓눌렸는지 바르작거린다. 뭐가 나아? 묻자 홍중은 둘 다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그냥 내가 좋은 걸로 할게. 너 이러려고 물어봤지. 대답도 않는 성화에 홍중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내 실수다.



사이 좋게 두 번씩 가고 나니 몸에 진이 다 빠졌다. 추울까 봐 귀찮아하는 몸에 옷을 입히고 물도 갖다주고 하니 녹은 떡처럼 홍중이 늘어졌다. 그 틈을 타 성화가 힘껏 껴안아 본다. 따듯하고 말랑한데 어떻게 보면 단단한 몸. 옅게 맡아지는 체취. 불편하다고 밀어낼 때 살짝 틈을 주면 만족한다는 듯이 얌전히 안겨있다. 성화가 좋아하는 홍중의 습성 중 하나. 돌아누운 홍중을 뒤에서 다시 껴안은 성화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홍중아. 왜. 홍중아아. 왜. 내일 우리 얘기 많이 하자. 응... 우리 이제 싸우지도 말고 맨날 서로한테 사랑한다고 해주자. 그건 좀... 홍중아 이럴 땐 알았어 해주는 거야. 알았어... 보고 싶었다고 해봐.




보고싶었다고 해보라고.

홍중아 나는 진짜 맨날 너 보고 싶었어...

뭐래 연락도 안 한 게...

...너도 안 했잖아.

...자자. 또 싸운다.

응...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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