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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의 온도, 겨울>, 크티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12월 22일
  • 7분 분량


날씨가 좋다. 햇빛이 눈부셨다. 커튼을 치지 않은 덕에 온전히 빛을 받은 홍중이 웃는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감은 눈에 내려온 속눈썹이 대신 빛을 흡수한다. 웃음이 나왔다. 창밖으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가득하다. 평화롭다.




‘속보입니다.’




그때, 단정한 목소리가 평화를 깨뜨렸다. 홍중의 고개가 돌아갔다. 소리의 원인은 생각 없이 틀어놓은 티브이였다.




‘오늘 오전 11시경 경남 진주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세 명의 남학생이 투신자살을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사를 통해…….’




참 뭐하기도 한 내용. 홍중이 슬픈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싸늘한 감각, 왜인지 모르는 기시감.




그리고 그날, 박성화가 사라졌다.


바로 한 달 전, 마음을 고백한 박성화가.










체온, 겨울




W. 크티










눈이 잘도 내렸다. 물감을 덮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이런 식으로 조금 더…… 홍중씨?”


“아 네, 죄송합니다.”


“오늘 몸이 안 좋으신가요? 왠지 컨디션이 나빠 보여요.”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계속하시죠.”




하얀 세상 속 작디작은 카페 안은 평화롭고 김홍중의 속은 불에 타올랐다. 티를 내지 않으려 갖은 애를 다 써봤지만 쉽사리 진정되지가 않았다. 한 기업과 협업을 위해 사전 미팅을 잡은 중요한 날. 눈동자는 종이 뭉텅이로 향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은 따라가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라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매년 이날, 홍중은 어떠한 일을 해도 무엇 하나 집중하고 해내지 못 했다. 그 독한 놈이. 열한 번의 수를 세고 있는 오늘은 김홍중의 전부였던 박성화를 잃은 날이었다.




“그럼 오늘은 정리하고 일어날까요?”


“아, 네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조금 더 있다 가보겠습니다.”


“네 작가님. 그때 뵙겠습니다.”




가벼운 인사로 미팅은 싱겁게 끝났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자를 보내고 나니 온몸에 바짝 들었던 긴장이 힘없이 풀렸다. 하……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숨을 뱉었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이 일을 한지가 벌써 몇 년인데 아직도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에게 화가 나는데도 별수 없이 한탄만 할 뿐, 더는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체념하며, 또 다시 그 시간을 떠올렸다.











딱, 딱.


좁은 방안, 일정한 울림이 가득 채워진다. 홍중의 손톱이 볼품없이 찢겨나갔다. 핏방울에 맺히고 통증이 밀려온다. 홍중은 느끼지 못했다. 어디야? 걱정 돼. 왜 집에 없어? 무슨 일인데 그래. 며칠째 1이 사라지지 않는 메세지 창을 보며 불안함을 내보였다.


좋아한다고 했다. 어른이 되기 싫은 어리숙한 나임에도 옆에 있고 싶다고 한 너였다. 그런 네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혼란스러움은 곧장 손끝에서 보여진다. 마음을 대변 한다는 듯 떨려왔다.




박성화와의 두 번째 만남. 입학식 때 그 애가 했던 말을 전부 기억한다.



진주에서 온 박성화고. 잘 부탁해요.



어설픈 표준어와 이상한 존댓말에 피식 웃던 지난 모습 역시 생각났다. 이 기억이 안타까워진 문제의 발단, 어제의 뉴스에 홍중은 직감적으로 성화가 떠올랐다. 두 번째 만남의 모든 대화가 스쳐 갔다. 알 수 없는 싸늘함이 불안하게도 문을 두드렸고, 점점 부술 듯이 때리다 못해 이내 기어코 박차고 들어와 홍중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설마 했던 마음, 부디 아니길 바랐던 간절함 모든 것이 성화에겐 통하지 못 했고 성화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홍중의 곁을 떠나버렸다.


집을 찾아가면 그 애의 어머니는 언제나 대답 없이 고개를 저으셨고 매일의 시작인 아침을 함께한 길과 치즈의 밥을 주던 가로등 아래에서 쭈그려 앉아 기다려봐도 오지 않았다. 학교를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아주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에 불과했다. 박성화는 단 하루도 학교에 오지 않았고, 결국 이때만은 네가 있어 주길 바랐던 수능이 있기 이 주일 전, 네가 자퇴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나쁜 새끼. 진짜 개새끼.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온갖 심한 욕으로 박성화를 까 내렸다. 그 어떤 욕을 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거 같이 힘든 마음이 나아지지 않아서 되려 더욱 벅차올랐다. 곁에 있고 싶다며, 항상 함께 하고 싶다며. 다 입 발린 거짓말. 사람 바보로 만든 거짓말. 네 얼굴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눈앞이 뜨거워지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눈가가 새빨개진 게 뻔했다.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는 채 칼바람으로 얼굴을 마구 그었다. 죽죽 그으며 지나가는 날카로움이 너무나 따끔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어 가만히 맞기만을 반복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름 진정이 된 거 같아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뭐야."




하지만 이번에도 박성화는 내 노력을 비웃었다. 현관문 앞에 참 곱게도 접힌 작은 쪽지. 어디에도 너라는 표시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 쪽지는 너의 것이 분명할 거라고 확신했다. 갑작스럽게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 독한 추위에도 떨지 않았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접힌 부분을 조심히 펼치며 숨을 골랐다. ……제발, 제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애원도 함께 했다.








[ 다시 만나. 만날 수 있을 거야. 내가 갈게. 미안해. ]








표정이 차갑게 굳어갔다. 나의 애원을 과연, 넌 알아주긴 알아줬을까. 생각이 밑바닥을 치달을 땐,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고, 눈을 한 번 깜빡이니 나는 너희 집 앞에 있었다. 네가 있길 바라는 이곳엔, 네가 아닌 너의 어머니가 나를 반겼다. 반겼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아주머니, 박성화 지금 있어요?"


"……무슨 말이니 그게."


"걔 지금 여기 있잖아요. 설마 벌써 갔어요?"


"……."


"……걔 진주로 간 거 맞죠. 그 일 때문에 간 거죠. 그런 거잖아요."


"홍중아……."


"한 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왜 기다리게 해놓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걔 는 제가 그렇게 호구 같대요?"


"……이미 돌아갔어. 내가 뭘 어쩌겠니."


"……."


"그냥 너한테는 아무 것도 말하지 말아달래."


"……."








이날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토해냈을까. 너를 처음으로 이해했던 여름밤? 네가 말도 없이 사라졌던 낮? 나는 어쩌면 그 시간들은 모두 잊어야 할 정도로 많이 슬펐을 거다. 그날들의 기억마저 전부 끌어안으면 난 더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부 다 잊어버리고 오늘만을 위해 울어야 했다. 울고 욕하고 그러다 다시 너를 원하고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어쩔 수 없는 굴레에 빠져 한참을 돌고 돌았다.






그냥 미친 것처럼 바삐 살았다. 당연하지만, 죽자고 공부하던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 내 주변을 감쌌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슬픔을 느낄 틈도 없었음에도 엉엉 울다 잠들고, 길을 걷다 울고, 그 길을 여전히 지키는, 네가 못 본 사이 다 커버린 치즈를 보며 울고, 치즈 역시 네가 오지 않아 울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울고 잠들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면, 뒤늦게 다짐한 원래의 삶. 하여 결정한 재수와 예술대 진학. 전공은 사진과. 미친 경쟁률을 겨우 뚫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 군대. 제대 후 덜 자란 머리로 현장에 들어가 뭔지도 모르는 지식을 알아나가고, 마침내 내 작업실을 차리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벌기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고 수없이 변해왔고 수차례 슬펐다. 뒤를 돌아보면 끝도 없이 나열되어있는 지난 시간들. 이 과정 끝에 서른이 되었다. 십일 년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열아홉인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어엿한 성인이었다. 괴리감이 들다가도 막연하게 인정하게 된다.



어른이 된 내 곁엔 네가 없었다.




바쁜 삶을 선택한 건 오로지 너 때문이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잊어야만 살 수 있었다. 1년도 함께 하지 않은 네가 뭐라고, 말도 없이 사라진 네가 뭐라고 나의 30년을 너 하나에 걸고 있었다. 미련하다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왜인지, 그저 올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작고 초라했던 종이쪽지 한 장으로 비롯된 믿음. 그리도 미운 너였지만, 그 믿음과 그리움으로 네가 좋아하던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바라보는 풍경을 너로 빗대어 셔터를 눌러가고 있다. 모든 게 모순된 순간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게 나의 방식이라고 우기고 싶었다. 네가 다시 와줄 때까지.










느낄 맛도 하나 없어 마시지 않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멍하니 머그잔에 손을 얹고 표면에 비친 나를 바라보면 어느새 머그잔의 온기가 차갑게 얼어있던 손으로 옮겨갔다. 맞닿은 온도가 점점 일정하게 미지근해졌다. 나는 아직도 이리 차가운데. 내리는 눈을 보다, 표면 위 비치는 나의 눈을 바라보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생각 없이 일어났다. 다시 돌아가 바쁜 하루를 이어가야 한다. 오늘이 어떠한 날이어도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더라고 나는 살아가야 한다. 지나간 실수로 한심하게 한탄하더라도 살아가야 한다.




'울고 있는 어린 아이 쏟아지는 별빛,'


'야야 그거 들었냐? 이번에,'


'보이지 않은 너를 기다리며,'


'오늘 오후 세 시 경,'


'우린 함께일 거야 어떤 아픔이든.'


'진짜? 야 근데 그럼,'


'십일 년 전 발생한 진주 남고생 투신자살의 사건의……'


'아직까지 난 그 순간 속에 살아.'




카페를 나와 여전히 같은 위치에 있는 집을 향하는 길엔 수많은 소음이 가득하다. 여러 식당에 틀어진 다양한 장르의 음악, 악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지나치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 전자제품 가게를 채운 다양한 크기의 화면,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소란스러운 뉴스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웃고, 누군가는 몇 년이 다 되어가는 사건사고를 해결한 다양한 소식들. 이 많은 소식과 소음 중 어느 하나라도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섞여 들어가 나 또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또다시 작아지고 또다시 그리워한다. 너와의 흔적이 너무나 많은 도로를 나 홀로 걷는다.








먀아, 냐아아.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면, 저 멀리 들리는 익숙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를 대신해 한참을 나와 함께 해주는 작은 생명. 제 명이 언제 다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꿋꿋하게 나를 지켜주는 생명.




먀아!




그런데 오늘은 왜인지, 그 생명의 소리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 듯하다. 미묘하게 달라진 소리에 처박은 고개를 올렸다.




“…….”


냐아아.


“…….”




푸석하게 밟히며 비명을 지르는 눈이 소리를 멈춘다. 마음을 가라앉히던 서글픔도 한순간에 멈춘다. 그 정막 사이, 일정히 울리는 생명, 치즈의 소리만이 가득 채워진다. 설마,






"안녕."


"……박성화."




그토록 그리던, 존재가 온전히 시야에 가득 담긴다. 짧은 순간, 죽었던 감각이 살아나고 생생했던 감각은 마비된 듯 멈춘다.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반복과 반복의 연속에도 나는 달려갔다. 너에게로 달렸다.


그리고 안겼다. 말도 안 되는 믿음은 허상이 아니라고 외친다.




"오랜만이야. 다시 만날 수 있다 했잖아."












초침이 움직인다.




어떠한 시간에 사로잡혀있어도 늘 그랬듯 시간은 흐르고 계절 역시 바뀐다. 눈이 오다 곧 세상이 멈춘 듯 그치고 그 차가움은 꽃잎의 조각들로 흩어지다 빗줄기로 모조리 씻겨 내려간다. 계절도, 사람도 전부 그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 영원한 줄 알았던, 영원하고 싶던 인연과 청춘 역시 흘러간다. 뜨거움에 질식할 것만 같은 열감기를 겪다가도 다시금 원래의 체온을 되찾고, 어쩌면 손끝이 시릴 만큼 낮아지기도 한다.





너로 인해 시작된 봄에서 네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앞으로의 수많은 봄.




남들은 전부 다 그 흐름을 인정하고 함께 떠나가는데, 그 미적지근한 온기에서 나는 여전히 같은 곳에 서 있다. 잠시 눈을 돌리다가도 참 미련하게 똑같은 곳에서 발걸음을 굳힌다.






하늘은 푸르다. 갑갑함에 올려보면, 애석하게도 푸른 빛을 내비친다. 그 색감 아래 나는 속절없이 눈이 멀어 간다. 어째 참으로 찬란한 게 너를 닮은 거 같아서.






나는 그 푸른 빛을, 그리고 그 빛을 닮은, 나를 온전히 담아내던 너의 눈을 여전히 동경한다.








시침이 움직인다.


부디 현실을 직시하라고 세상이 다그친다. 눈과 귀를 막는다.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보고 싶었어."




그때, 네가 와준다. 애써 부정해 왔던 어리숙한 그 시절의 네가 아닌 '지금'의 너로서 다가와 준다. 나는 서른이고, 너 역시 서른이다. 그때의 그대로에서 이젠 어른이 되었다.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어른, 다만 더는 두렵지 않은 이유는, 온전한 네가 나의 곁에 있어 준다는 것. 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나 많이 밉지."


"......글쎄."




열아홉과 서른의 사이. 너무나 변한 너의 변한 것 하나 없는 퍽 다정한 물음. 그리고 모호한 대답과 흘리듯 나오는 옅은 미소.




"그럼 아직 나 좋아해?"




우리는 참, 우리다.




"......어. 좋아해."


"......"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너로 인해 시작된 봄에서 네가 없이 살아갔던 수많은 봄, 너 없이 외로웠던 지난 시간을 다독이는 더욱 따스히 다가올 봄.








나는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우리는 새롭게,


끌어안은 체감의 온도를 전부 사랑하며.




오늘도 서로를 기다리다, 서로를 그리다. 그렇게 담아내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크티입니다. 모쪼록 따뜻하고 예쁜 겨울을 보내시고 계실까요? 이번 겨울호를 끝으로 인사를 네 번 모두 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쉽지 않았을텐데 매 계절마다 고생해주신 계간팀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매번 지각으로 폐를 끼쳐 죄송했습니다 ㅠㅠ

계간 성홍 덕분에 성홍에 더 애정도 생기고 계절이라는 좋은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어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비록 마감이 매번 늦어져,,,,비루한 글을 드렸지만.....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ㅠㅠ

오래오래 우리 성홍하면서 행복합시다! 1년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려요! 성홍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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