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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이레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3월 21일
  • 6분 분량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음악을 켜고 읽어주세요.




 흔한 권태기라고 생각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말이구나 했다. 동거하던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 일주일 전, 김홍중은 그 집에서 자신의 흔적을 단 하나도 빼먹지 않고 지웠다. 한참 후에 퇴근한 박성화는 반쪽짜리 집을 보고 생각했다. 정말 김홍중의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둘은 헤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헤어지자는 말을, 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으니 이별을 못 했다.




 김홍중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짐을 옮겼다. 집을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둘이 사는 집인데 들어가기만 하면 혼자였어서. 김홍중은 혼자서 남겨진 기분이 싫었다.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몰라도, 버려진 기분을 느끼는 게 누가 바늘로 속을 쿡 찌르는 기분이라서. 그래서 나왔다. 아예 혼자인 게 차라리 속이 시원해서. 그럼에도 박성화의 연락은 아직도 김홍중 핸드폰에 징징 울린다. 밥 챙겨, 늦게 들어가면 연락해. 데리러 갈까? 집주소는 알려주라. 당연히 답장은 못 했다. 사실 못 했다라기보다는 안 했다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가 김홍중을 압박하는 중이었고, 김홍중은 다른 것에 신경을 둘 여유가 없었다. 하필 그때는 박성화의 직장이 여유로울 시즌이었다. 사랑은 타이밍인데. 엇갈린다. 또, 또.




 커피와 핫식스, 박카스가 도대체 하루에 몇 캔씩 김홍중의 몸 안에 축적되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원체 김홍중은 밥 같은 걸 챙기는 성정도 아니었고,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샐러드나 커피로 대충 때워버리고 한 달 새 개판 직전이 된 집에서는 눈만 감고 뜬 뒤에 바로 나왔다. 김홍중은 차근차근 무너지는 중이었다. 박성화의 부재를 실감했다. 핸드폰을 한 번 보고 박성화에게 집 주소를 찍었다. 그냥 가끔, 한 번 씩은 들여다 보라는 의미로 보낸 문자였다. 그래도 우리 아직 안 헤어졌잖아. 아직 나 사랑할 수도 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나를 혼자 두지 말아달라는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 같다.




 김홍중의 문자를 받고 박성화는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온기 하나 없는 집. 주인의 손길이라곤 받은 적이 없는 태로 쌓여있는 무언가들. 박성화는 차게 식는다. 천천히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냉장고를 열어봤다. 코드조차 꽂혀 있지 않은 채였다. 박성화는 생각했다. 김홍중에게 저나 이 집은 비슷한 처지 같다고. 김홍중에게 버려졌다. 말끔해진 집 사이에 박성화가 앉아 김홍중을 기다렸고, 김홍중이 집에 오자마자 말을 건넸다.




 헤어지자 홍중아.




 너무나도 담담하게 건네진 말에, 너무나도 담담하게 대답이 건네졌다. 서로 할 말이 분명하게도 많았지만 아무도 입을 떼지 않는다. 서로에게 올 수 있는 한계까지 온 건가, 하며 생각한다.




 그래. 미안해.




 김홍중은 미안의 대상이 누구인지, 애써 모르는 척 했다. 김홍중이 무너졌다. 박성화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김홍중이라는 존재에 끝이 선언됐다. 그날 김홍중은 묘하게 박성화의 향수 냄새가 밴 이불에 코를 박고 잠을 잤다. 근래 들어 유일하게 제대로 잔 날이었다. 박성화를 처음 만난 날의 꿈을 꿨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체육대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날씨도 맑다 못 해 청명했다. 방송부 김홍중은 더위랑 성정이 맞지 않기도 했고, 땀내는 것도 싫어 방송실에서 숨어 있었다. 에어컨도 있고 혼자 남은 방송실에서 김홍중이 무료함을 느끼는 찰나에, 홍중이 틀어둔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창문 아래에서 들렸다. 자연스레 이끌려 내려다 본 시야에는 박성화만 가득 들어 차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안녕, 하고 박성화가 인사를 한다. 그게 서로의 시작이었고, 김홍중은 꿈에서 깼다. 그 다음날부터, 아주 천천히. 김홍중은 잠겨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다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챙기며 그저 일, 일, 일.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 김홍중은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잡지 못 했다. 팀장님 계단에서 픽 쓰러지셔서 한 층을 내리 구르셨어요. 여즉 식겁한 팀 막내의 목소리. 김홍중은 시선을 내린다.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져 있고 찢기거나 쓸린 곳에는 드레싱이 되어 반창고가 붙었다. 안정제 맞고 오늘은 쉬셔야 한대요. 마지막까지도 불안한 목소리의 막내를 보내고 김홍중은 머리 위의 조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이 부셨다. 다시 잠에 들고 싶었다.




 꿈에 또 박성화가 나왔다. 속이 상하거나 몸이 상하거나. 둘 중에 하나. 꼭 이럴 때에만 나와주는 게 괘씸해서 손을 내밀어 가슴팍을 쳤다. 박성화가 아픈 표정을 한다. 저런 표정은 처음인데. 김홍중이 웃으며 말을 한다. 이질적이게도 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있다. 솔직히 김홍중은 서러웠다. 박성화 없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자신이. 입꼬리가 점점 내려간다. 목이 막힌다. 숨이 가빠진다.




성화야.




나는 너 없이 못 사나 봐.

너 보고 싶은 것 같아 내가.

못 하겠어 다.




...... 그냥 다 그만하면 안 돼?

나 그만두고 싶어.

그만 할래.




 비상연락망. 7년의 무수히 많은 흔적들 중 그저 하나. 김홍중이 회사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팀원들이 비상연락망을 통해 연락을 취한 곳은 당연하다는 듯이 박성화의 전화였다. 그...... 김홍중 팀장님 지인이시죠? 팀장님이 지금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뒷말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 이름을 물어 전화를 끊은 뒤 반가를 내고, 차 문을 부술 듯이 열고 과속카메라를 몇 번이나 지나쳤다. 박성화는 김홍중이 쓰러졌다는 말 한 마디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고작 이 주가 지났는데 김홍중의 얼굴이, 박성화가 사랑해 마지 않던 그 얼굴이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이 날서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안정제를 맞고 잠에 든 김홍중의 손을 꽉 맞잡고 있는 게 전부였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잡고 있던 손이 파드득 떨리더니 김홍중이 몽롱하게 눈을 뜬다. 곧 그새로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홍중아, 홍아. 아무리 불러도 쉬이 대답을 하지 못 한다.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끅끅 서럽게도 운다. 박성화 속이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있다. 박성화는 안절부절 못 한 채로 김홍중을 안아낸다.




 그만한단다.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도대체 뭐를? 홍중아. 도대체 뭐를 그만두고 싶어. 못 살겠다는 말은 왜 해. 박성화는 울고 싶었다. 김홍중의 목소리가 너무 처절해서. 꿈에서도 이렇게 허덕일 정도로 서럽게 울며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박성화는 애써 외면한다. 그만두고 싶은 게 자신과의 관계를 그만두고 싶었던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닐 거라고. 열이 잔뜩 올라 꿈에 허덕이는 김홍중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박성화 품 속에 엉엉 울며 버둥대는 김홍중이 아리다. 속이 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러면 안 될 일이었다. 뭐를 그만하고 싶었는지, 알면서도 외면하면 안 될 일이었다.




 김홍중이 퇴원했다. 한 번 크게 앓고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있던 것만 같은 박성화가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문다. 김홍중은 병가와 휴가를 같이 썼다. 동료가 119에 실려간 건 또 처음 겪은 이슈인 건지 부장도 아무 말 없이 인가를 내줬다. 갈 곳이라고는 집 밖에 없는 김홍중이 오피스텔로 향한다. 김홍중은 의지를 이미 싹 다 써버렸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데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박성화 없이 모든 것을 혼자 버텨내는 것에 전부. 더 이상 연명할 수가 없다. 다시 돌려놓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만. 화병을 깼다. 가장 큰 조각을 주워들고 욕조로 들어간다. 김홍중은 좀, 쉬고 싶었다.




 박성화는 전화를 받지 않는 김홍중에 불안함을 느낀다. 간호사를 불러 진정제를 놓은 뒤 김홍중을 재우고 반가를 낸 탓에 밀린 일들을 종일 처리하느라 야근을 면치 못 했다. 하루가 꼬박 지난 탓에 다시 병원으로 갔지만 벌써 퇴원했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는데 김홍중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세 통, 다섯 통. 부재중 전화.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는다. 그만하고 싶다는 김홍중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박성화 뇌리를 맴돈다. 혹여 전화를 받을까 핸드폰을 놓지도 못 하고 김홍중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여는 순간 김홍중 핸드폰 벨소리가 들린다. 집에 김홍중이 있다.




 분명 집에 김홍중이 있어야만 했다. 퇴원도 했고, 핸드폰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서 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적막함만 소름끼치도록 내려 앉아 있었다. 화병이 깨져 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홍중아. 이름을 소리내 부른다. 홍중아.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홍중아, 하며 집안을 헤집는다. 침실에도 거실에도 김홍중이 없다. 박성화는 욕실 문을 연다. 욕조에 담긴 물은 이미 차게 식어 있었고, 김홍중도 차게 식어있었다. 욕조 밖으로 삐져 나온 팔에 피가 잔뜩 흘러 굳어 있다. 아아, 아. 홍중아. 홍중아. 홍중아. 아니야. 눈 좀 떠. 아니야. 김홍중. 홍아, 홍중아. 어떡, 어떡해. 홍중아. 아아. 박성화가 차게 식은 김홍중을 욕조 밖으로 빼낸다. 차가워진 김홍중을 꽉 안아낸다.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질 않는다. 박성화가 무너진다. 소리를 지른다. 아니라며, 이거 아니라며.




 이웃들의 신고로 찾아온 경찰들은 박성화의 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119를 불렀다. 사망 선고를 받았다. 장례를 치러야 한단다. 박성화가 상주가 되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듯이 순리처럼 착착.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박성화는 어지러웠다. 김홍중의 몇 몇 지인들이 와 울어도, 박성화는 장례 내내 단 한 번을 울지 않았다. 물론 잠도, 밥도 단 한 번도 못 자고 못 먹었다. 장례 마지막 날 김홍중과 박성화가 유일하게 오래 같이 지내던 동생인 우영이 왔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줬다. 홍중을 납골당에 보낼 수는 없어 유골함을 들고 집에 왔다. 우영도 함께였다. 소주와 컵라면을 들고. 우영이 잔에 소주를 따른다. 박성화가 마른 세수를 한다. 한 잔을 털어넣고 다시 얼굴을 쓸어내린다. 손에 눈가를 파묻는다. 김홍중이 너무 보고 싶었다. 3일 동안 내리 받은 상처가 곪아 터지는 순간이었다. 우영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목놓아 우는 성화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무 것도 없었다.




 김홍중에게는 제가 전부였다. 잃고 싶지 않아서 헤어지잔 소리 하나 못 하고 권태기에도 얼굴 보는 것만 피하려 집까지 나갔다. 보고 싶다는 말에 집 주소 하나만 보내는 애였다. 혼자가 된 것 같은 박성화가 김홍중을 떠나는 순간 김홍중은 진짜 혼자가 됐다. 김홍중의 전부는 박성화였으니까.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병원에서 김홍중을 깨워 내가 다시 왔다고, 네가 보고 싶어하는 내가 왔다고. 얘기를 해 줬어야 했다. 나도 너를 보고 싶었다고 홍중아. 내 실수였다고. 내가 널 다시 찾으러 왔다고.




 아직도 박성화 핸드폰의 잠금 화면은 어느 날 김홍중이 찍어 보내준 바닷가의 사진이었고, 잠금을 풀면 김홍중의 얼굴이 나타났다. 김홍중이 박성화 품 안에 들어가 웃고 있는 사진. 박성화는 문득 이 모든 게 꿈 같다고 생각한다. 박성화의 숨이 가빠진다. 김홍중이 너무. 너무. 홍중이가. 보고 싶어. 홍중이 보고 싶어. 하면 정우영이 박성화 등을 쓸어내린다.




 박성화는 김홍중을 잃었다. 박성화의 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순간이다.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레입니다 ^.^ 계간 성홍 봄 호에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현생이 많이 도와주질 않아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제출을 하게 되어 아주 조금의 뿌듯함이 있네요 ㅎ.ㅎ…… 성홍러로서 많은 성홍러들이 보실 수 있는 계간 성홍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저도 계간 성홍을 열심히 즐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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