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의 너에게>, 익명 2
- 계간 성홍
- 2022년 12월 22일
- 5분 분량
- 계간 성홍 여름호 <추신은 사랑해>, <우편은 분실 위험이 있습니다>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 사망 소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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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
“잘 지냈어?”
성화는 가만히 제 앞으로 내밀어지는 손의 주인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넘긴 검은빛 머리, 매니큐어 흔적 하나 없는 단정한 손톱, 우둘투둘하게 새살이 돋아있는 목과 손목 주위의 흉터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태연한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실제로 만난 홍중은 수십번 꿨던 꿈속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때문에, 성화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꿈이 아닌 현실에 나타난 김홍중이라는 사실을.
“왜 왔어?”
“나 센티넬이야.”
“어?”
“센티넬끼리는 파트너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안됐어.”
“…….”
“A군 말하는 거야. 나 걔랑 파트너 아니라고.”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그거야….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많은 것이 내포되어있는 말이었다. 성화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깔끔한 목재 바닥의 무늬를 가만히 관찰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예전부터 이런 쪽으로 눈치 하나는 재빨랐으니 마음먹고 조사했다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단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을 가정해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일어날 거라고 생각조차 안 했다. 그래서 놀랐다. 보기가 두려웠다.
몰랐으면 했다. 제가 홍중을 떠났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이유도. 잊었으면 했다. 떠난 그날 이후, 어떤 계기이든 홍중이 말끔히 저에 대해 모든 걸 망각해버리길 바랬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고, 이기적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성화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비난 받을 각오는 홍중을 떠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되어있었다. 지금 보니 일어나지 않을 거라 안일하게 판단한 것 같긴 하지만.
“…나 내일 다시 올 거야.”
“…….”
“또 도망가지마. 이제는 모른 척 안 해줄 거야.”
“안가.”
“그래, 그럼.”
“…….”
“내일 보자.”
“…….”
“반갑게, 오 년 전처럼 말이야.”
딸랑이는 종소리가 홍중이 떠남을 알렸지만 성화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배려였다. 홍중을 마주하기를 껄끄러워하는 성화를 위해. 먼저 자리를 피해준 거였다. 생각 정리를 할 시간을 친히 남겨준 거였다. 저에 대한, 흔들리는 성화의 마음을 알고.
성화는 제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내내 내민 그 손을 마주 잡고 싶었던 충동을 억제하느라 손톱자국으로 깊게 팬 흔적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주 오랫동안, 오픈 시간을 한참 넘기고 첫 손님의 인기척이 문 앞에 나타났다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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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한 5년 내내 성화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홍중이의 인생에서 제가 지워지는 것.
운명이라는 우리의 관계가 거스를 수 없이 끊어져 버리는 것.
그러니까, 너는 홍중이를 지켜줘.
내가 약속을 지키러 간 동안.
그럼 내가 네 후회는 없던 일로 만들어줄게.
너만은, 후회하지 않도록 해줄게.
스무살의 기억은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잠시 엿본 끔찍한 미래는 그날부터 매시간 매분 매초 성화를 따라다녔다.
눈을 감으면 수백번도 더 되새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전히 두렵고 떨치지 못한 머나먼 미래의 플래시백. 성화는 앉은 제 자리에서 두 발을 뻗는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경험이 알려준 사실, 이곳의 성화는 유령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할 수 있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홍중아.”
“박성화는 내버려 둬. 어차피 네가 아는 걔 아니야.”
“김홍중.”
“눈물겨운 사랑이네. 그때처럼 말이야.”
“멍청아.”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고로 경험하지 못한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미래의 기억 또한 매한가지였다. 기억은 애매한 지점에서 끊긴다. A군의 손 뒤로 떠오르는 수많은 가전제품들. 홍중의 덩치에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덩어리가 홍중의 곁을 빙글빙글 돌며 뭉치다, 떠오른다.
미래의 김홍중은 죽었을게 분명했다. 성화는 매일매일 땀에 젖어 찝찝한 잠옷을 벗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미래의 김홍중이 죽었다는 것을.
오로지 박성화 때문에.
“졸업 축하해.”
“…너도.”
“취직도 축하하고.”
“…….”
“다치지 말고, 잘 지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떤 과정으로 그 비극이 일어나는지 성화는 몰랐다. C급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능력은 물론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하나였다.
그리고 그 결말은 결국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는 것.
“…성화야!”
“왜?”
“너 어디가?”
“어?”
“너 나 다시는 안 볼 거야?”
“…….”
“왜? 내가 뭐 잘못했어?”
“…무슨 소리야. 내가 너를 왜 안 봐.”
“그럼 왜 그렇게 말해?”
“…열아홉살로는 마지막이니까. 인사한 거지. 스무살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만나자고.”
졸업식 날은 눈이 왔다. 종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바로 앞 사람의 표정마저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성화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아홉 살, 마지막 십 대와의 안녕을 고하는 졸업식에서 박성화는 떠났다.
자신을 잡아달라던 김홍중을 두고.
/
“겨울 바다가 그렇게 예쁘대.”
“그래서?”
“바다 보러 갈래?”
가게 앞 계단 난간에 앉아있던 홍중의 양 뺨과 귀가 새빨갰다. 성화는 흘깃 홍중의 발끝을 곁눈질 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담뱃재들이 난잡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성화를 기다리며 생긴 흔적일게 눈에 뻔히 보였다. 목 끝까지 차오른 잔소리들을 꾹꾹 눌러 삼켰다.
대신 제 목에 걸려있던 목도리를 풀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홍중의 목에 천천히 둘렀다. 온기를 잃은 목덜미가 서늘했지만 단단히 껴입은 덕에 그렇게 춥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지금?”
“어.”
“나 가게 열어야 돼.”
“쉰다고 해. 어차피 손님도 별로 없잖아.”
“…….”
“나한테 시간 좀 내줘.”
코끝을 스치는 시린 바람에 성화는 모자를 덮어쓰고 몸을 움츠렸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정통으로 맞은 얼굴과 귀가 화끈거렸다. 저도 모르게 벌린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몽실몽실 솟아 나왔다. 든든히 챙겨입었다고 생각했던 옷도 무자비한 겨울 기온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춥다.”
“…그러게.”
“그래도 예쁘다.”
“…….”
“칼바람 뚫고 온 보람은 없지만.”
“…….”
“생각보다 별로네. 겨울 바다.”
“…….”
“근데 미안하진 않아.”
겨울바다라고 해서 그리 특출난 건 없었다. 시골인 성화의 가게 근처 바다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성화는 제주도나 부산에서 본 여름 바다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고집까지 부리며 오자고 주장한 홍중이 머쓱할까 봐.
그리고 겨울 바다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으니까.
“짠.”
“…웬 술?”
“같이 마시자고. 우리 한 번도 같이 마셔본 적 없잖아.”
“운전은?”
“아, 그렇네. 성화 너 면허 있어?”
“어.”
“그래. 그럼 갈 때는 네가 수고 좀 해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말을 마친 홍중은 곧바로 뚜껑을 따 소주 한 병을 목구멍에 붓듯이 마셨다. 성화가 말릴 새도 없었다. 눈 깜빡하니 초록빛 유리병은 텅 비어있었다.
술에 약한 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홍중이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 추위로 얼어있던 볼을 포함한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을 벌려 호흡하는 홍중에게서 약한 알코올 향이 났다.
한참 주머니를 뒤적이던 홍중이 꺼내 든 것은 담뱃갑이었다. 끔찍한 경고문구로 포장되어있는 갑을 가볍게 연 홍중이 연초 하나를 빼 어물었다. 성화가 제게로 향해 내민 담뱃갑을 거절하자 미련 없이 주머니에 다시 쑤셔 넣고는 라이터를 꺼냈다. 꽁지에 불을 붙이고는 볼이 패일 정도로 깊게 빨아들였다. 능숙한 솜씨였다.
성화는 그런 홍중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한참 연기를 삼키던 홍중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 이름을 부를 때까지.
바다를 바라봤다. 차갑고, 춥고, 예쁘지 않은, 외로운 겨울 바다를.
“성화야.”
“왜?”
“많이 아픈 거야?”
“…….”
“얼마나 남았어? 한 달?”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내가 많이 늦었지.”
성화는 그 순간 홍중을 이해했다.
홍중이 아침부터 벌인 모든 행동의 출처를 깨달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짜증나던 홍중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홍중아.”
“응.”
“너 나 좋아해?”
“…….”
“나는,”
너를 좋아했어.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말은 혀끝을 통해 홍중에게로 넘어갔다.
지독히도 춥고, 차갑고, 짰다.
성화의 첫 키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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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증폭 실험에 동의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경고했던 부분이 있었다.
능력의 소실이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만약 잘못한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홍중은 그 말을 들으며 기도했다.
부디 그 일이 제게 일어나게 해달라고.
“안녕.”
“왜 떠났어?”
“…….”
“내가 붙잡아달라고 했잖아.”
“홍중아.”
“…….”
“…….”
“말해. 듣고 있어.”
나 놓친 거 후회해?
실수는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졸업식 날 이상해 보이던 박성화를 그냥 보내준 것, 박성화와 파트너를 만나게 한 것, 가이드 하기 싫다고 징징거린 것. 부끄러움에 곧이곧대로 말하지 못하고 돌려서 붙잡아달라고 한 것.
그렇지만 박성화를 놓친 건 실수가 아니었다.
실수라고 할 수 없었다.
박성화는 본인의 의지로 떠났으니까.
“홍중아. 내가….”
“…….”
“죽여달라고 하면, 죽여줄 거야?”
“아니.”
“…….”
“내가 너를 어떻게 죽여.”
박성화가 떠난 날, 홍중을 반긴 것은 들어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침대 위에 고이 올려진 꽃다발이었다. 샛노란 빛의 메리골드. 성화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자, 홍중의 탄생화였다. 홍중은 멍하니 예쁘게 손질된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꽃다발에 녹은 눈의 잔해가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어쩌면 찾을 수도 있었다. 붙잡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홍중은 가만히 제게 남겨진 꽃다발을 소중히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박성화가 저를 생각하며 직접 남긴 흔적을, 마음을 가만히 가지고 있는 쪽을 택했다.
늘 제게 그렇게 굴어주던 박성화에게, 한 번쯤은 그래 주고 싶었기 때문에.
되짚어보면, 은연중에 홍중 역시도 성화와는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았다.
“내가 많이 아파.”
“어디가?”
“아마 한 달도 안 남았을 거야.”
“…….”
“홍중아, 나 너 아직 많이.”
“갈게.”
“…….”
“만나러 갈게. 그러니까….”
“…….”
“직접 말해줘.”
박성화를 찾는 건 간단했다. 국가의 정보력조차 동원할 필요 없었다. 박성화의 사진과 인적 사항, 주소가 적힌 정보를 내미는 손에 홍중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가득 젖은 얼굴을 한 센티넬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쓰라린 목 탓에 할 수 있는 건 눈짓이 전부였지만.
홍중씨,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파장이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능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말이에요.
홍중의 온 몸에는 흉터가 아주 많았다.
전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던 것을 소멸시킨 흔적이었다.
그 날, 홍중은 하나의 존재를 파괴했고, 그 흔적은 홍중의 목에 새겨졌다.
그리고 다음날, 센티넬 홍중은 하나의 쪽지를 남긴 채 센터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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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하느라 막았던 손을 뗐다. 벌건 핏물이 손바닥에 흥건했다.
냅킨을 꺼내 들고는 손바닥에 문질렀다. 멀끔히 지워지지 않은 핏물은 붉은 기를 남겼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안 이상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성화는 몸을 일으켰다. 주방 싱크대에 물을 틀었다.
“이거 내 번호야.”
“알아.”
“연락해줘.”
“…….”
“갈게.”
홍중에게 받은 번호는 예쁘게 계산대 옆에 붙여놨다. 익숙한 열 한 자리 숫자. 홍중이 처음 휴대폰을 샀을 때부터 쭉 쓰던 번호라 성화에겐 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번호였다. 여전히 성화의 핸드폰의 김홍중이라고 고이 저장된 번호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홍중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다. 마지막으로 홍중은 다음 만남의 기약이 아닌 인사를 했으니까.
아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화가 자신을 부르기를. 자신을 필요로 하기를.
과거의 성화가 늘 그랬던 것처럼.
“성화야. 나 보내지 마.”
“…….”
“후회 안 할 수 있어?”
“뭘?”
“나 이렇게 보내는 거. 후회 안 할 수 있냐고.”
후회 할리가 없었다. 할 수 있었던 것이 없었으니까.
홍중은 가이드가 됐고, 그건 성화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때 대해 성화가 후회할 것은 없었다.
그러니, 성화는 후회하고 마는 것이다.
“성화야.”
“나는 너 좋아해.”
“지금도, 나중에도.”
떠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날의 홍중이는 정말로 죽었을까?
[여보세요.]
“홍중아. 나야.”
그렇지만,
[응, 알아.]
“지난번에 봤던 바다가 예쁘더라.”
[…다시 갈래? 오늘.]
그곳의 홍중이가 죽든 살았든.
이곳의 성화는 분명히 죽는다.
성화는 입구로 다가선다. 가게로 다가오는 인영들이 보였다.
대충 휘갈긴 클로즈 종이를 현관에 붙였다. 불을 켠 채로 문도 잠그지 않고 현관을 나선다. 멀리서 보이던 인영을 스쳐 지나간다. 벙찐 표정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까닥인다.
더 이상 후회를 늘리고 싶진 않았다.
/
“홍중아.”
나 죽여줄래?
/
홍중은 가만히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수없이 떠올리며.
시큰한 발목을 붙잡고.
오래도록.
작가의 말
계간 성홍 마지막까지 참여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 후회없는 이번 겨울을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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