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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상>, f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3월 21일
  • 10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9월 23일




 입원 사흘 차 아침에 퇴원 통보를 받았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원내 약국에서 일주일 치 조제약을 받아서 나왔다. 으레 오전 시간대 병원이 그렇듯 입구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인파를 빠져나온 그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쓰러지기 전에 두르고 있었던 목도리 안에서 훈기가 느껴졌다. 목덜미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 그는 목도리를 풀어서 가방 안에 넣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고작 사흘 만에.





 그날도 아침이었다. 나갈 채비를 하면서 계속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일시적인 두통이겠거니 넘긴 게 문제였다.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고 그새 두통은 심해졌다.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다고 나아질 게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초록불로 바뀌었다. 눈을 부릅 뜨고 첫 걸음을 뗐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반나절 만에 깨어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응급실 의사가 다가왔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이요. 의사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쓰러지셨어요. 지나가던 분이 신고해주셔서 응급실 오셨구요. 그제야 그는 눈을 껌뻑이며 짧게 탄식했다. 아침에 무심코 지나친 두통이 전조 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검사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의사에 말에 그는 일어나려고 움직였다. 놀란 의사가 그의 어깨를 잡아서 다시 눕혔다. 안정을 취하셔야 돼요. 누워서 들으세요. 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간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듣고 세 시간 뒤에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혼자 움직이다가 순간 눈 앞이 핑 돌아서 넘어질 뻔한 것을 간호사의 도움으로 겨우 면했다. 결국 휠체어에 실리다시피 앉아서 갔다. 소등 시간이 한참 지난 뒤라서 병실은 숨소리만 들렸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주삿바늘을 고정하고 내일 아침에 있을 검사 안내까지 받고 나서야 누울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운이 좋게도 창가 쪽으로 배정 받았다. 안 그래도 갑갑한데 사방이 막혀 있으면 더 그랬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외벽에 붙은 브랜드 로고 간판에 불빛이 선명했다. 문득 인터넷에서 본 기사가 생각났다. 밤새 불을 밝히는 아파트 조명 때문에 곤충들이 타 죽는 일이 잦아졌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빛을 쫓는 본능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누구를 탓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끝문장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글이었다.





 한때 그 동네에 살았었다.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긴 이층집이었다. 이사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1층을 셋방으로 두자고 했다. 세를 받으면 카페 운영을 조금 유연하게 해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홍중은 이를 반대했다. 나는 우리집에 다른 사람이 사는 거 싫어. 우리는 2층에 살면 되잖아. 1층도 우리집이고 2층도 우리집이야. 얼마 전부터 카페 일이 힘들다며 집에 오면 옷도 안 갈아입고 소파에 누워 곯아떨아지기 일쑤였음에도 홍중은 셋방을 거절했다. 편한 길을 두고 지금을 고집하려는 이유를 더 묻고 싶었으나 홍중이 2층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하지 않았다.


 그는 유난히 깔끔한 상태를 좋아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에 묻은 물기까지 싹 닦아냈다. 그러고도 체력이 남으면 거실 바닥에 물걸레질을 했다. 스팀청소기니 뭐니 힘을 덜 들여도 되는 좋은 물건도 많은데 그는 손걸레를 고집했다.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 손 안 닿은 곳 없도록 꼼꼼하게 닦았다. 다 쓴 걸레는 구정물 한 줌 안 나올 때까지 깨끗하게 빨아서 건조대에 널었다. 그리고 나서 소파에 기절하듯 누워 잠든 홍중의 옷을 갈아입히고 살살 흔들어 깨워서 화장실로 보냈다.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다며 칭얼대는 모습을 보면 눈꺼풀이 앞으로 막 쏟아지다가도 웃음이 났다.


 휴일에 홍중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도 소매를 걷고 옆으로 붙었다가 아래로 쫓겨났다. 내가 닦을 거야! 같이 닦으면 금방 끝나잖아. 네가 1층 닦았으니까 2층은 내가 닦을 거야. 나도 양심이란 게 있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나무 계단을 벅벅 닦아내는 솜씨가 서툴러서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야, 왜 웃어. 내가 웃겨? 아니야, 귀여워서 그래. 우리 홍중이 다 컸네, 청소도 다 하고.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홍중의 움직임이 멈췄다. 순간 당황한 그가 흠칫했다. 성화야.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 우리 이 집 얻으려고 엄청 고생했잖아.

 ─ ……

 ─ 쪽방에서 여름엔 선풍기 끌어안고 겨울엔 서로 끌어안고 살다보니 몇 년이 흐른 줄도 모르고 살았잖아.

 ─ 그랬었지.

 ─ 그래도 냉난방 안되는 건 견딜만 했어.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 ……

 ─ 그 쪽방마저도 우리 공간이 아니었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


 대학 졸업 후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카페를 개업한 대신 집이 없었다. 매출이 들쑥날쑥해서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했다. 초반에 반지하 방을 구해서 살았다. 그러나 월세 낼 돈마저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고, 그들은 고심 끝에 가게 뒤편에 쪽방을 만들었다. 임시 방편으로 만든 공간이니 냉난방이 안되는 건 당연했다. 이불 깔 자리만 있으면 됐다며 위로했지만 마음 편히 잔 날이 하루도 없었다. 기관지가 약한 홍중은 잔병을 달고 살았고 그는 허리 통증 때문에 일하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남들은 어떻게 방 한 칸 구할 돈도 없냐며 타박했다. 홍중이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돈 벌어서 집 사자. 무슨 집이든 우리 것으로 만들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홍중의 눈이 너무 서글퍼서, 그는 조용히 홍중을 끌어안고 다독였다. 너무 무리하지 마. 남들이 뭐라 해도 우리만 좋으면 됐어. 그거면 됐어.


 그때를 생각하니 울컥했는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고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 너도 그렇겠지만 나한테는 이 집이 너무 소중해. 월세 받는다 해도 일을 그만 해도 될 정도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집은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으로 두고 싶어. 내 맘 이해하지, 성화야.





 기다렸던 버스가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멈춘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펼치면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사진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칸이 있다. 그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이사 첫날 대문 옆에 문패를 달고 그 앞에서 찍은 것이었다. 문패에 새겨진 이름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클랙슨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버스 기사가 ‘안 탑니까?’ 눈짓으로 물었다.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내자 기사는 바로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사진 속 문패로 향했다. 고개를 들면, 그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지갑을 넣고 걸음을 옮겼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병원에서 이층집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이층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라는 것. 문패도 바뀌어 있었다. 뜻을 알 수 없는 한자로 새겨진 이름 석 자와 사진 속 문패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 대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힘겹게 문턱을 넘었다.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 “누구요?” 의심스럽게 물었다. 당황한 그는 집을 잘못 찾은 것 같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눈시울이 시큰했다.


 방향을 잃은 분노가 울컥 솟구쳤다. 우리집인데. 어떻게 구한 집인데. 언젠가 쪽방에서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다짐했던 홍중처럼, 그는 이를 까드득 갈았다. 문득 이층집을 팔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에 내놓기까지 모든 과정을 자신이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분노가 향하는 곳이 아까 마주한 노인이 아닌 그 자신임을 깨닫는다.





 홍중은 발바닥이 닳도록 집 안을 돌아다녔다. 만약 집이 눈밭이었다면 홍중의 발자국이 빼곡하게 찍혔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늦잠 잘 법도 한데 일찍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기분과 어울리는 노래를 틀었다. 나갈 일이 없어도 옷을 갈아입었다. 침대 위에 옷을 잔뜩 늘어놓고 거울을 보면서 신중하게 골랐다. 차를 내어 온 그가 어디 가게? 물어보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옷을 갈아입으면 기분이 좋아져. 그러곤 옷장에서 그의 옷을 몇 벌 꺼냈다. 그의 손에 들린 쟁반을 가져가서 바닥에 내려놓고 팔을 끌어당겨 거울 앞에 세웠다. 너도 한번 입어 봐. 기분이 달라진다니까. 괜찮다며 손사레 쳐도 홍중은 개의치 않고 그의 몸에 옷을 가져다대었다. 홍중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불현 듯 확인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제는 편안할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오랫동안 그늘졌던 홍중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이 눈을 얼마 만에 보는지. 새삼 감격스러웠다. 몸이 힘든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지만, 홍중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미치도록 괴로웠다. 당신에게 사랑만 주겠노라 약속했던 처음에 비해 당시 그는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고 느꼈다. 종알종알 떠드는 홍중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그는 새롭게 다짐했다.


 너에게 오는 모든 시련과 파도는 모두 내가 맞아야지.

 내가 죽더라도 너는 살려야지, 그렇게라도 너를 지켜야지.





 그는 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 이층집이 아니면 내 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어디로 가지. 사흘 전 쓰러졌던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동시에 신호가 바뀌었다. 시선은 신호등에 고정하고 건너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성화야.


 뜻밖의 목소리에 그는 횡단보도를 다 건넌 뒤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두웠던 액정이 확 밝아지면서 글자가 뜬다. 엄마. 다시 핸드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조용한 공간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네, 말씀하세요.”

 ─ 어쩜 전화를 한 통을 안 하니. 걱정되게……

 “죄송해요. 바빠가지고 집도 늦게 들어가요.”

 ─ 지금, 밖이니?

 “…연차 썼어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 그건 아니구. 네 얼굴 보고 싶어서. 안 본 지 오래 됐잖아.


 그는 대답을 망설였다. 이를 알아챈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무리하지 말고 너 시간 있을 때 와.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려는 듯했다.


 “엄마.”

 ─ 응.

 “지금 갈게요.”

 ─ 지금?

 “안 그래도 근처에 있었거든요. 마침 생각났는데 딱 맞춰서 전화 주셨네.”

 ─ 그럼, 지금 엄마 보러 올래?

 “네.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고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엄마가 뭘 좋아했더라.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준비했는데. 숫자를 세어보지 않아도 멀어진 세월이 실감났다.



 매사에 온화하고 차분한 그녀가 고함을 치면서 사납게 눈을 떴던 때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않고 동갑내기 친구와 카페를 개업하겠다고 했던 날. 너 정도면 웬만한 이름 있는 곳은 갈 수 있는데,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거야!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퍽 때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안돼, 절대 안돼! 비명 같은 외침이었다. 그래도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엄마가 반대해도 내 계획대로 할 거예요. 그녀의 성정을 물려받아 순했던 아들의 뒤늦은 반항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 너, 설마…… 홍중이, 걔랑 아예 같이 살 작정이야?

 ─ 네.

 ─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무리 쫓아와서 끌어내도, 난 걔한테 갈 거야.

 ─ ……

 ─ 홍중이한테 뭐라 하지 마요. 걔도 나 하나 믿고 가진 거 다 내려놓은 애예요.


 그는 그 길로 집을 나갔다. 그녀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나왔다. 문 앞에 서서 그 소리를 잠깐 듣다가, 어렵게 발을 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지그시 깨문 입술 안에 맴도는 말이 제법 서늘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곧 문이 열렸다. 단정하고 수수한 차림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그의 손에 들린 과일바구니를 보고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빈 손으로 와도 괜찮은데. 싱겁게 웃고 말았다. 오래는 못 있어요. 뒤에 선약 있어서.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다. 이곳에서 생긴 많은 기억 때문에 숨이 막혀서 못 견딘다는 것을.


 부엌에서 마실 것을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놓은 그녀는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하게 앉으세요.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그러자 그녀가 환해진 낯으로 묻는다. 엄마 무릎 안 좋은 거 알고 있었어? 예전처럼 화목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얼굴을 했다. 벌써부터 가슴께가 답답했다. 괜히 목이 타서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냥…… 회사 다녀요.”

 “회사? 어디?”

 “친구가 하는 데예요.”

 “어떤 친구?”

 “……”


 꼭 듣고 싶은 대답이라도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불쾌해진 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아차 싶은 그녀가 말을 돌린다.


 “오랜만에 보니까 모르고 산 게 많잖아. 그래서……”

 “그전엔 한 마디도 안 물어보셨잖아요.”

 “……”

 “대학 동기가 운영하는 작은 회산데 제가 딱하다고 일부러 자리 만들어줬어요.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커서 조만간 그만 두려구요.”

 “친구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그럴 나이는 지났어요.”


 매듭을 아무리 만져도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질문하면 그의 무뚝뚝한 대답이 오고 가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별안간 그녀는 홍중에 대해 말했다.


 “그 애는 어떻게 지내니?”

 “……”

 “너랑 같이 산다고 했던 애 말야. 홍중이었나……”


 컵을 잡으려고 뻗은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그냥 얼굴만 보고 갈 걸. 후회가 밀려왔다. 이래서, 이래서……


 “왜 그래……혹시 엄마가 실수했어?”


 지난 2년을 통째로 짓이긴 불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목이 메이고 숨이 가빠졌다. 참을 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놀란 그녀가 안절부절했다. 다급한 마음에 소매를 끌어당겨 그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그가 고개를 뒤로 내뺐다.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괜찮아요. 말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싸늘했다. 한숨을 푹 쉬고 겨우 입을 뗐다.


 “이제야 궁금해요?”

 “아니, 엄마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없어요.”

 “……”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홍중의 마른 등이 어른거렸다.


 “2년 전에 떠났어요. 아파서.”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어날 때가 됐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가끔 홍중은 깊은 잠에 들면 천둥이 치든 장대비가 내리든 새까맣게 몰랐기 때문에 그날도 그러려니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홍중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도 아닌데 어딘가 이상했다. 순간 뒷골이 서늘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홍중은 몸을 떨고 있었다.


 홍중아, 괜찮아?


 그가 들어온 줄도 몰랐는지 홍중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너, 너, 왜 이래.


 입가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홍중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눈길을 따라가자 하얀 시트 위에 그의 손보다 큰 너비의 피가 고여 있었다. 마르지 않은 피가 사방으로 번졌다.


 갑자기, 여기가, 막…… 막, 타는 것마냥 아파서……


 홍중은 가슴 언저리를 문지르다 말고 엉엉 울었다. 여기가 너무 아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렵게 팔을 뻗어 우는 홍중을 끌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라고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했더라. 꺽꺽 소리를 내며 우는 홍중을 등에 업고 곧장 병원에 갔던 것 같다. 그 사이에 홍중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홍중이 제게 뭐라고 했는지, 그 정신으로 어떻게 응급실까지 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보호자 대기실에 있었다. 혼란에 빠져 원무과 직원이 내민 서류를 보기만 했다.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자 보다 못한 직원이 밖으로 나와서 그를 달래며 작성을 도왔다. 눈물 때문에 글씨가 자꾸 번져서 몇 번이고 다시 써야 했다.


 넋 놓고 앉아 있는 그에게 간호사가 다가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김홍중 환자 보호자분 맞으시죠? 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일어났다. 뒷말도 안 듣고 응급실 안으로 돌진하려는 걸 뜯어말린 간호사가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환자분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입원하셔야 돼요. 현재 병상이 꽉 차서 빈 자리 나올 때까지 시간 좀 걸리니까 집에 가셔서 짐 챙겨오세요. 제 말 듣고 계세요? 지금 당장 집에 가셔서……





 너무 충격적인 현실은 오히려 꿈 같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아서 온몸이 현실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어디서 홍중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벼락같이 일어났다. 희망이 다가오는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언제 퇴원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잠깐 빛났던 눈이 의사의 말을 듣고 푹 꺼지기를 여러번.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제대로 손 한번 못 썼다. 형식적인 회진이 반복되자 그는 벌컥 화를 냈다.


 ─ 왜 맨날 방법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여기가 제일 좋은 병원이라고 해서 온 건데,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가만히 계시는 거예요, 왜!


 병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다들 숨소리도 조심했다. 그 옆의 레지던트가 그를 달래려고 나섰다. 보호자분, 진정하시고……. 제 팔을 슬쩍 붙잡는 레지던트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 언제는 늦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면서요.

 ─ ……

 ─ 젊으니까 회복도 빠를 거라고 지켜보자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만 믿었단 말이에요. 그 말만 믿고 1년 넘게 기다렸다구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별 말씀 안 하시잖아요. 컨디션이랑 밥 먹었는지만 물어보고, 앞으로, 앞으로 어떤, 어떤 치료를 해볼 거라고……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주치의는 낮게 “죄송합니다.” 말하고 짧게 목례를 했다. 울음을 간신히 넘기고 말을 이어가려는데, 홍중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 그만해. 성화야.

 ─ ……

 ─ 할 만큼 했어. 너도, 의사 선생님도.

 ─ ……

 ─ 그러니까 울지 말고. 재밌는 얘기만 하자. 응?


 그렇게 말하는 홍중의 눈시울도 흠뻑 젖어 있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병원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불어났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귀금속을 팔았다. 돈이 되는 것들은 일단 팔고 봤다. 그래도 모자라서 가게 물건을 팔았고, 얼마 안 가 가게도 팔았다. 가게를 팔고 온 날엔 비가 내렸다. 말 못할 서러움에 한참을 울다가 들어갔다. 그의 몰골을 보고 놀란 홍중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물었다. 그는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었다며 둘러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홍중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한계점에 임박했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 끝에, 이층집을 팔았다.


 이층집을 판 날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본가에 일이 있다며 홍중의 옆에 일일 간병인을 두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청소기를 꺼내 돌렸다. 건조대에 말라 비틀어진 걸레를 적셔서 1층부터 2층까지 손 안 닿은 곳 없도록 꼼꼼하게 걸레질을 했다. 한 맺힌 사람처럼 이를 악 물고 집 안을 닦고 또 닦았다.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이렇게 공들인 집을 어떻게 쉽게 팔았겠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는 홍중이 이런 말을 했었다. 오랜만에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었다.


 성화야. 부탁 하나만 할게.


 죽을 식히느라 부채질을 하던 그가 동작을 멈추고 홍중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부탁.

 집, 팔자.

 ……

 너 혼자 병원비 감당 못하는 거 다 알아. 그러니까 그 집, 팔자.


 숨이 턱 막혔다. 조용히 죽 그릇과 부채를 내려놓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차피 같은 마음인데 말도 안 하고 집을 판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눈치가 빠른 홍중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차분하게 물었다.


 이미 팔았어?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팔았어. 홍중이 이층집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잘 알기에 더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잘했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홍중은 침대 난간을 내리고 두 발을 보호자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링거줄이 엉키지 않게 천천히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너도 힘들었을 텐데…… 잘 생각했어.

 ……

 나 퇴원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집 사자. 그러면 되잖아, 그치.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몸을 틀어 홍중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품 안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이 떨어져 자국이 남았다. 처음 피를 토하고 놀라서 울던 날. 그가 그랬던 것처럼. 홍중은 많이 야윈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라는 말을 반복했다.





 새로운 집을 기대하며 퇴원을 애타게 기다렸던 홍중은, 이듬해 봄에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미안하다를 말하는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요. 앞으로 볼 일이 없다는 의미를 담아서 말했다. 지금처럼 잘 지내세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걷다 보니 홍중과 운영했었던 카페 앞이었다. 가게를 팔고 난 뒤 그 자리에 세 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닫았다. 지금은 디저트 가게였다. 편식하는 음식이 많았던 홍중은 디저트를 좋아해서 길을 가다가 파는 곳을 보면 꼭 들러서 사 먹었다. 신호가 바뀌고 그는 가게와 반대 방향으로 건너갔다.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꽃잎이 허공에 나부꼈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 앞에 밑동이 굵직한 매화나무가 있었다. 봄을 알리려는 듯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 가지를 흔들어 꽃잎을 호외처럼 뿌렸다. 겨우내 이 순간만을 기다렸을 매화나무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홍중을 떠올렸다.


 코끝이 시큰했다. 아직은 봄이 애달프다.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계간 성홍 봄호에 <애상>으로 참여한 친구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너무 떨리네요. 몇 번을 갈아엎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느라 퇴고를 못 했습니다. 오탈자가 있어도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봄에 슬픈 일이 많았어서 날씨가 따뜻해도 마냥 웃을 수가 없는 날도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글에 봄에 대한 제 감상이 묻어 있습니다.

짧고 어설픈 글이지만 배경 음악과 함께 감상하시면 더 좋을 거예요.


그리고 계간 성홍을 개최하시고 기다려주신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즐거웠습니다. 여유만 있다면 여름호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른 분들의 작품을 감상하러 가겠습니다,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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