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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부부 전성시대>, 쿄코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6월 21일
  • 8분 분량



OTT서비스 전성시대. 자극으로 점철된 외산 드라마 사이에서 우리네 컨텐츠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법은 여러개지만 그 중 손쉬운 방법이 몇 개 있다. <그것보다 더 자극적인 드라마를 만든다> 오장육부가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조선시대 좀비물, 돈 걸어서 사람들 스튜디오에 가둬놓고 달고나 빨게 만들다 총으로 쏴버리기, 10년동안 활약한 슈퍼히어로 죽여버리기 등등... 홍중은 신혼집 65인치 TV에 연결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며 줄거리를 읽다가 그만 지루함에 털썩 기대고 말았다.

대체 저런게 뭐가 자극적이라고 사람들은 열광할까?

대게 사는 게 무료한 자들이나 저런 고자극에 목 매는거겠지. 홍중은 그렇게 생각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홍중은 곧 이혼한다. 사유는 배우자의 불륜이었다. 3년 사귀었고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렇게 됐다.

건물은 좀 낡았어도 서비스 공간도 있고 평수가 넉넉해보였던 옛아파트에서 시작하고 싶었던 홍중과 달리 아내는 그런 후진데서 어떻게 사냐고 짜증을 냈고 따라서 근처 신도시에서 3년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전세기간이 끝나면 여자가 갖고 있던 아파트의 재개발 준공이 끝나 그곳으로 이사갈 예정이었다. 역시 그게 문제였던 걸까? 결혼 생활은 딱 그 전세만큼만 유지됐다. 아내의 불륜 상대는-차라리 호스트바 선수였으면 덜 상처받았을 것 같은데-위트있고 멋있는 남자였다. 반도체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라고 했다. 연애할 때도 그랬듯이 바람 같았고 그만큼 쿨했던 여자는 순순히 제 잘못을 시인했고 네가 원하는대로 이혼해주리라 했다. 폴리아모리도 괜찮은데 그건 네가 싫어할 거 같아서. 홍중은 남몰래 폴리아모리를 검색해봤다가 소리를 내질렀다. 너 진짜 미쳤어? 덧붙이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썩 괜찮게 복수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홍중은 차라리 이혼을 해주지 말까 했는데 그래봤자 자신한테 남는게 없다는 걸 알고 위자료만 왕창 받아낸채 이혼하기로 결정했고 이것이 벌써 반년 전 일이 됐다.

"우리 신혼집은 어떡할까."

"너 맘대로 해. 근데 그 집이 왜 우리집이야? 그 집구석 인테리어 벽지 빼고 다 니 취향인데 니네 집이지. "

"야. 네가 여기서 살자고 했잖아."

"아 맞네. 아무튼 너 맘대로 해~ 나는 강릉 가서 살 거야."

그렇게 바람처럼 (전)아내가 떠난다. 홍중에게 남은 것은 그녀가 남기고 간 건 빌트인 가구를 제외한 혼수 일부와 결혼 앨범, 아픔과 상처 그리고 혼자 살기엔 다소 넓은 이 집 뿐이었다. 이 중 제것이라곤 아픔과 상처 뿐이었어서, 홍중은 그 전셋집을 미련하게 사버렸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홍중은 그 정도 재력이 됐고 무엇보다 새 사랑을 시작한다면 자가로 시작해야될 거 같았다. 나름의 징크스였다. 이런 거 만들면 안좋은데.. 중얼거리며 홍중은 휴대폰과 연결된 홈 어플로 집안에 있는 모든 불을 끄면서 흐느꼈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전 아내한테 찾아가 너 때문에 넷플릭스에 내는 17000원이 아까워졌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김홍중도 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혼 절차를 밟으면서 아내는 홍중을 걱정했다. 그녀는 이 이혼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테니 홍중보고 새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에게 너무 어이없고 실망해서 사실 아무나 만난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아무나는 아니고. 온더락 잔에 위스키 부어 홀짝 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작업을 걸길래 홧김에 만났다. 아까부터 말 걸고 싶었어요 라고 얼굴을 붉히는 남자는 잘생겼고 조곤조곤한 매력이 있었지만 그게 대단히 매력적이었던 건 아니다. 홍중은 이런 다정충이랑 연애를 해본 역사가 없었다. 지금 아내도 왈가닥이면 왈가닥이었지 조용한 편은 아니었고 전 애인들도 다들 한 성깔 한 성격하는 타입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자를 선뜻 받아들인 건 그냥 그런 종류의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기대면 한 없이 버텨줄 거 같은 사람이...

초등학교 때 학원가기 싫어서 하루 빠졌던 게 최대 일탈이었던 홍중은 그 날 처음 보는 남자랑 원나잇을 했다. 술기운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도 갈무리 못하는 어른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건 오롯이 홍중의 선택이다. 찬 손이 바지를 벗기고 허벅지를 만지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벌려줬다. 제가 위에서 해도 돼요? 잠깐 망설임이 들었지만 귀찮아서 그러라고 했다. 뒤를 뚫린 건 처음이었는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진 않았다. 오 나 좀 음란한 타입이었던 걸까?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흔들리고 있는데 딴 생각하고 있는 거 눈치챘으면서도 집중하라고 혼내지 않는 남자의 태도가 좋았다. 그래서 원나잇 아니고 여러나잇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성화였고 성화가 떠먹여주는 아이스크림을 낼름 받아먹는 게 익숙해질쯤 문득 그녀 생각이 나 카톡에 나도 만나는 사람 생겼어 라고 보냈다. 너무 잘됐다. 이혼 가속화ㅋㅋ 허무하게 찍힌 반대편 말풍선에 홍중은 휴대폰을 저 멀리 치워두고 성화의 품에 기어들어갔다.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라 목에 벤 팔뚝이 편하지 않았지만 별말없이 끌어안아 주는 손길에 훌쩍 눈물이 났다. 안좋은 일 있었어? 다정하게 묻는 사람에게 더는 못할 짓이라고 사실대로 고했다. 나 사실 유부남이고, 너 속인 거고, 어쩌고 저쩌고... 긴밤동안 성화는 괜찮다는 말로 홍중을 다독였다. 정리하고 있는 거잖아.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건데 그런 건 전혀 문제 안되지. 홍중아 너무 슬퍼하지마.

홍중은 그녀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는 것에 현타가 왔다. 아마도 자신은 구질구질하게 그녀를 이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를 버리고 행복해진 너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노라고. 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아무튼 홍중과 성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꽤 열렬히 연애놀음을 했다. 취향이 아니라고 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러다가 문득 어느 햇빛 좋은 날 성화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화야 우리 그만하자."

크림이 잔뜩 올라간 크로플을 썰던 손이 잠시 멈칫한다. 그 옆에선 미리 잘라놓은 수플레 케이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홍중은 무신경한 손길로 성화가 잘라놓은 과일 한조각과 부들부들하게 녹아내린 수플레 케이크 겉면을 함께 집어 한입에 넣었다. 성화는 그런 얘기를 무슨 디저트 먹다 하냐는 표정이었다.

"우리 여기까지 하자."

"...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지금까지 고마웠어."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3시의 에어컨 18도의 인스타 감성 디저트 카페. 매정한 말에 성화가 커피잔 아래로 눈물을 떨군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성화와 한 연애놀음 그 사이에 사귀자라던가, 우리 무슨 사이야라던가 하는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끝내지는 말자. 우리 좋았잖아. 삼류 드라마라기엔 너무 고자극인 대사가 지나간다. 인생은 역시 넷플릭스 혹은 그 이상이 맞나보다. 옆테이블에서 꽁냥 거리던 커플의 수근거림이 줄어들더니 이내 이쪽을 흘끗거렸다. 홍중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화를 지나쳤다. 고마웠어 라고 제일 나쁜류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불륜 부부 전성시대

박성화 김홍중

홍중은 넷플릭스에 만약 자신의 인생이 드라마화돼서 들어가게 된다면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할까 싶다.

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끝낸 홍중. 중간에 다른 사람도 만나는 등 이러저러 노력하지만 마음의 헛헛함을 숨길 수 없다. 그러던 도중 옆집에 부부 한쌍이 이사온다. 그런데 곧 홍중은 이상함을 깨닫는다...

요즘 들어 옆집에 떡을 돌리는 집은 흔치 않다. 옆집 사람과 얼굴도 모르는 경우도 많은게 요즘이다. 홍중도 이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 떡을 돌리지 않았고 3년동안 이 아파트에 살면서 대화를 나눈 이웃이라곤 옆집에 살던 교사부부 뿐이었다. 그랬기에 배인터폰이 울렸을 땐 누구지라는 생각보다 뭐지?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작은 화면 속에 들어찬 인영은 두 사람. 홍중은 거의 소파에서 생활했고 실내화를 꼭 신는 편이라 층간소음으로 올라올리 없을텐데. 무슨 일이세요? 묻자 저화질의 화면 속 말갛게 생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이사왔어요. 떡 좀 드시라고 가지고 왔는데...

교사부부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며 자식부부 내외에게 이 집을 줄까한다고 하더니 그 자식 부부인듯 했다. 교사부부는 매우 예의 발랐으며 친절한 사람들이었으니 자식부부도 비슷하겠지. 아! 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홍중은 바로 대답하고 집 안에 보답할 것이 있는지 생각했다. 냉장고 속 며칠 전 들어온 망고가 있었다. 홍중이 몇 개 그릇에 옮겨담고 문을 열었다.

"부모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희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동그란 얼굴에 곰살 맞은 눈웃음. 밤색 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여자는 누가봐도 호감상의 얼굴이었다. 홍중이든 망고에 반색하며 안주셔도 된다고 손사레를 치다가다도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다고 받아드는 것마저도 너무나도 평범하고 보통의 어른의 행동이었다. 마찬 가지로 보통의 어른인 홍중은 원래라면 여자가 주는 시루떡을 받아들고 몇번 허리를 숙인 뒤 평소처럼 집에 들어갔어야 맞다. 근데 이게 무슨일이지? 이쪽은 저희 남편이에요 하고 소개시켜준 남자는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다. 재수없게도 풍기는 향기마저도. 홍중은 순간 몰아치는 위기감과 진돗개 경보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이쪽은 저희 남편이에요. 여자가 소개해주는 남자는 박성화였다.

닫힌 문 앞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던 홍중은 곧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떡을 잘라놓고 키친타올을 그 위에 덮었다. 썼던 가위를 설거지해서 제자리에 돌려놨다. 샤워를 했고 세탁기를 돌리고 나온 빨래더미를 다시 건조기에 돌렸다.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가 아직 자기에는 좀 이르다는 걸 깨닫고 유튜브로 알고리즘에 뜬 영상 몇 개 시청하다 주인이 없어진 베개 하나를 품에 껴안았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자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몇가지 장면이 머릿 속에 흘러들어온다.

어? 핸드폰 바꿨네.

아.. 이건 업무용 폰이야. 연락 섞이는 게 싫어서.

주말마다 일가는 거야 그럼?

응. 평일만 만날 수 있어서... 미안해.

에이 뭐가 미안해. 나도 주말에는 쉬고 괜찮지.

그러니까 아무나 만나면 안됐는데. 내가 유부남이라고 고백했을 때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던 건 너 역시 유부남이어서 그랬을까? 내 앞에서 보이던 눈물은 가짜였던 걸까? 스스로를 불륜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반대편의 입장이 됐다. 넷플릭스에 내는 17000원이 아깝다고 아깝지 않게 만들어주면 어떡하냐. 홍중은 울고 싶었다 아주 많이.

홍중은 다른 사람보다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이었기에 옆집 부부와 자주 마주치진 않았다. 기껏해봐야 가끔 일찍 퇴근 하는 날 민아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정도. 성화와 마주치는 일을 여태껏 없었다. 홍중은 오히려 이것이 더 괴로웠다. 인생은 재앙의 연속이라고 어떤 불행을 끊기 위해 했던 일이 다른 불행을 불러들였다. 왜 내가 이 집을 사가지곤. 원래 같았으면 전세 계약이 끝나 집을 보러다니고 있었을텐데, 차라리 성화와 마주치면 벌레보듯이 쳐다보고 말텐데 어쩐지 마주치는 건 민아 뿐이었다.

"그... 남편 분은 늦게 들어오시나봐요."

"아 저희 주말부부여서요."

어쩐지. 확인사살을 받으니 입이 마른다. 늘 주말에 일이 있다고 했더니 그동안 민아를 만나러 갔나보다. 나와 헤어지고 결혼한 건 아닐까 희망도 가져봤는데, 작년에 신혼여행 때 갔다왔던 보라카이 섬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헛된 희망이었다. 요즘 불륜이 유행인가? 이쯤되면 화가난다. 간통죄 폐지될 때 시위라도 같이 했어야 되는데. 느슨해진 부부 관계 속 긴장감을 주는 건 좋다지만 이런 식으로 스릴있게 살라는 건 아니지. 나는 뭔 죄고 민아씨는 뭔 죄냐고. 이제는 좀 빡치는 지경이었다. 박성화를 떠나보내고 미안함에 문득문득 차올랐던 울컥함이 아깝게까지 느껴졌다.

둘이서 만나면 언젠가 한 번은 꼭 그 잘난 얼굴에 주먹을 꽂아줘야지. 왜 말하지 않았냐고, 너는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작업을 건거냐고, 너야말로 그 마음 진심이 아니었던 거냐고... 하룻밤 장난으로 우습게 넘기려고 했던 것에 천벌이라도 받는 것마냥 말이다.

*

성화와 다시 만난 것은 홍중이 오랜만에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오던 어느 새벽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한테 잡혀 오지게 마셨다. 술을 잘 못하기도 하고 딱히 그 알딸딸함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잘 먹지도 않았는데 한두잔 권유하는 걸 거절할 방법이 없어 다 받아 먹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니 가봐야된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왔으니 안마시겠다고 해도 돈 들어갈 때도 없는 게 대리 부르라고 다들 아우성이었다.

결국 오는 길에 하수구에 토 한 번 쏟고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와 가글액을 사서 가글까지 했다. 나이 처먹고 이게 무슨 짓이야 진짜... 다시는 술 마시지 말아야지. 대리비를 치르고 들어가자니 이상하게도 입구에서 담배가 말렸다. 결혼하면서 끊은지 꽤 됐는데 그동안 한 번도 생각이 안나가다 이상하게 밤하늘을 보니 생각이 났다. 어젯밤 비가 내려 열대야가 가셔 약간 서늘해진 밤. 여름밤은 묘하게 밝다. 하늘을 쳐다보던 홍중이 비틀비틀 홀로 빛나고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석사 시절 자주 폈던 독한 담배를 샀다. 단지 내 유일한 흡연 구역으로 들어가니 그제서야 라이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호기롭게 필터 끝을 문게 보람이 없게 됐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불을 빌릴 사람도 없었다. 에효... 탄식에 술냄새가 베어나왔다.

"빨아."

숙인 고개를 누군가 훅 잡아채 올렸다. 눈을 내리깐채 담배 끝에 담배를 댔다. 누군지 확인해 볼 필요없이 턱에 느껴지는 손의 온도로도 알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 어렵게 불을 빌려줘야될까. 홍중은 그러면서도 훅 빨아올렸다. 매캐한 연기가 폐부로 들어간다. 너무 오랜만에 피운 탓일까 멋도 없게 켈록댔다. 허리를 숙여 잔기침을 쏟아내는 홍중을 성화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도 안나올 지경이다. 홍중은 사실 술이 다 깼지만, 아직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빌려 물어볼 생각이다. 너 무슨 생각이었어? 라고..

멱살을 쥐고 끌어 당기니 끌어당기는대로 이끌려온다. 홍중은 고개를 들어 성화의 얼굴을 마주했다. 헤어진 후로 처음 제대로 마주하는 성화의 얼굴은 그렇게 야위지도 않았고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볼품없이 구겨진채였다. 야 왜 우냐? 실소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 홍중이 당황한다. 얘 운다 진짜 울어. 한 명은 눈물로, 한 명은 식은 땀으로 얼굴이 젖어갔다.

"사랑해."

"허."

"사랑해 홍중아..."

왜 사람들은 불륜에 빠지는 걸까? 그런 류의 취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홍중은 전 아내와 신혼 시절 불륜에 대해서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 마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더라. 그 사람이 진짜 사랑일 수도 있잖아 이런 개소리였던 것 같은데. 여전히 홍중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다. 진짜 사랑이랑 만나서 결혼한 거 아닌가. 그냥 그때의 스릴이 재밌는 걸 사랑이니 뭐니로 포장하는 거겠지. 그런 인색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자기야 생각해봐. 당신이랑 좋게 지내던 사람이 울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걸 면전에서 그렇게 막 거절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을 걸?

뭘 생각까지 해봐. 아닌 건 아닌 거야.

여보. 여보도 이런 얼굴을 보고 나를 두고 그 사람한테 간 걸까? 해답을 찾을 수 없어 경험자에게라도 묻고 싶다. 헛소리 하지 말고 왜 그랬냐고 캐물어야되는데. 나는 그렇다 치고 민아씨는 뭔 죄냐고 화를 내야되는데. 어쩌다 우리 집 옆으로 온 거냐고 물어봐야되는데. 왜 나는 네가 우니까 안아주고 싶지. 홍중은 그제서야 자신이 성화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약간의 방어작용. 이 행복이 끝나면 어떡하지에서 출발한 작은 두려움. 너마저 떠나면 내가 너무 불행해질 거 같다는 착각. 놓아준다는 얄팍한 변명으로 숨긴 것은... 사랑은 너무 쉽게 사람을 합리화 시킨다. 민아씨 미안해요. 여보 화내서 미안해. 우린 진짜 천생연분이었나봐 같은 실수를 하는 걸 보면.

fin.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쿄코입니다.

계간에 참가하게 되어 기쁘네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쓰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별 내용 없으셔서 실망하시지 않으셨을까 걱정이 됩니다...

모쪼록 재밌게 읽어주셨기를 바라며

다들 행복하시길!

사랑을 담아, 쿄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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