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星>, 김피터
- 계간 성홍
- 2022년 3월 21일
- 6분 분량
나는 너를 언제나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넌 항상 빛나고 있었으니까.
네가 전학 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일반 인문계 학교에 아이돌 연습생이 학교에 온다는 일은 꽤나 신기한 일이라 애들은 창문가에 붙어서 너의 등교를 구경하곤 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학교가 들썩들썩했었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난 얼굴도 모르는 연습생에게 관심을 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난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끝내 네 등굣길에 눈길 하나를 주지 않았다.
네가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지루한 학교에서 너는 제법 큰 물결이었기에 반에 앉아만 있어도 네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속사 소속이라거나, 연습 때문에 1교시만 듣고 조퇴를 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에서 거절했다거나, 집이 정말 잘 산다거나, 집이 매우 가난하다거나. 그 나이 때 애들이 그렇듯 이야기는 진실보단 재미 위주로 돌아갔기에 너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크고 자극적으로 퍼져갔다. 거기에 남자 연습생치곤 키도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네 외모가 한 몫 더했을 것이다. 까칠하고 성격이 나쁘다는 말은 기본이고 데뷔를 할 뻔했는데 그룹에서 왕따를 당해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그 정도면 아니라고 할 법도 했는데 넌 항상 조용하게 지냈다. 그렇게 작은 애가 밥도 안 먹고 어떻게 사는지 점심시간 때 교실을 지나가면 넌 항상 엎드려 있었으니까.
너에게 관심이 가게 된 건 아마 4월의 시작. 난 의도치 않게 점심시간마다 너와 마주쳤다. 운동장이 잘 보이지만 막상 운동장에선 잘 보이지 않는 장소. 점심시간을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장소에 너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으니까. 처음에 널 봤을 땐 무슨 사람이 아니라 요정인 줄 알았다. 작은 건 둘째치고 매서운 듯 귀여운 얼굴에 새하얀 머리까지. 그 넌 그곳의 벤치에 앉아서 바나나 우유를 마시다가 종이 치면 반으로 들어가곤 했다. 밥을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궁금했지만 네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운동장을 보려고 나오던 나는 그때부터 너를 보려고 나오기 시작했다. 새하얀 머리가 벚꽃을 가득 끌어안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났으니까. 내리깐 눈에 붙어있는 길고 얇은 속눈썹이 자꾸 꿈에 나왔으니까.
“안녕.”
“아,안녕?”
갑자기 들려오는 인사말에 놀라서 목소리가 갈라지자 넌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갑자기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웃었다. 네가 웃는 걸 그때 처음 봤다. 웃으니 얄쌍한 얼굴이 귀엽고 개구지게 변했다. 너 재밌다. 그, 그래? 고마워. 넌 내가 그때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테지. 바보 같은 박성화. 왜 거기서 삑사리를 내? 그리고 고마워가 뭐냐, 고마워가. 넌 한참을 웃다가 나한테 초코우유 하나를 건네줬다. 네 온기가 더해져서 약간은 미지근해진 초코우유를.
“너 박성화지? 야구한다던. 네 얘기 많이 들었어.”
학교에 친구도 없는 네가 누구한테서 얘기를 들었을지 궁금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네가 날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네 얘기를 많이 들었노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걸 들은 네 반응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다. 네가 학교에서 도는 소문을 어디까지 알고 어떻게 받아드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네 말에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만났다. 내가 너로 인해서 학교 가는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고 말하면 넌 믿을까.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난 네가 보고 싶어서 학교에 갔으니까. 지루하게 4교시를 끝내고 나면 밥을 더 받아먹으려고 급식실에 앉아있던 것도 포기하고 네가 있을 벤치로 달려갔다. 이제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만의 공간이니까. 그곳에서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
우린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넌 나만 보면 신난 강아지처럼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네게 꼬리가 달렸다면 아마 꼬리를 휙휙 흔드느라 점심시간이 끝나면 항상 꼬리가 뻐근했겠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조잘조잘 얘기하는 덕분에 난 너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네가 실은 제법 유명한 예고에 가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어쩌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거나 회사에서 너를 포함해 데뷔 조를 꾸리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무리하게 등기를 보냈다는 이야기. 네가 꽃을 좋아해서 일부러 분홍색이나 하얀색 등의 화려한 머리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 예명으로 꽃과 관련된 이름을 하고 싶은데 작명 센스가 안 좋아 힘들다며 넌 깔깔 웃었다. 그리고 네가 조금 아프다는 얘기까지.
“발목이 아프면 얌전히 있어야 하는데. 여기 수업 끝나고 가면 이미 다른 애들은 연습에 지쳐서 땀에 젖어있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더라. 그래서 더 오버하게 돼. 그러니까 자꾸 안 낫고...”
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으며 다 마신 우유갑을 매만졌다. 난 하얗고 얇은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어느새 네 머리엔 듬성듬성 검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그런 네게서 눈을 떼고 싶었지만 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제야 난 이 감정에 정의를 내렸기에.
“나도 아파.”
“응?”
“어깨를 다쳤거든. 나 학교 야구부 투수인 건 알지? 근데 어깨를 다쳤대. 웃기지. 그래서 매일 여기 온 거야. 여기선 마음껏 운동하고 뛰는 애들이 잘 보이거든.”
넌 이상하게도 네 이야기를 할 때보다 내 이야기를 들을 때 더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하나도 안 웃겨. 어떡해. 네 손이 너덜해진 우유갑에서 벗어나 내 어깨에 닿는다. 난 처음으로 어깨에 심장이 없음에 감사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내 귀가 터지도록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네게도 느껴졌을 테니까. 멍청하게도 지금 내가, 네가 아픈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지금 좀 쉬었다가 다시 하면,
“안 괜찮잖아.”
너는 어떻게 나보다 나에 대해서 잘 알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이 시기에 얌전히 쉬고 있는 것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야구를 접을 수도 그렇다고 계속할 수도 없는 날 보며 너는 꼭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난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넌 네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나에게 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난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꼭 날 발가벗긴 채 네 앞에 세워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넌 급하게 건물에 들어가는 날 잡지도 않고 보내줬다. 네가 그때 날 불렀더라면 눈물범벅인 얼굴이라도 네게 보여주며 널 봤을 텐데.
그렇게 한동안 널 볼 수 없었다. 들리는 말론 네가 데뷔 조에 들어가서 이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아니면 원래 가려던 예고에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얘기. 어떤 소문이 진짜든 간에 딱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넌 여기에 없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인사 한번 안 하고 들어온 내가 미웠다. 바보 같은 박성화. 눈물이 뭐라고 애한테 인사 한번 못 해준 거야. 앞으로 널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일 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싶었다.
널 다시 보게 된 건 초가을. 한껏 더웠다가 밤이 되면 급하게 쌀쌀해지는 날씨. 대입 상담을 하고 침울해져 있는 나에게 넌 모르는 번호로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지. 넌 그때도 내게 휴대폰이 없어서 번호를 줄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사실은 수첩에 내 번호를 적어간 네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네가 언젠간 내게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래서 모르는 번호도, 인터넷 전화까지도 다 받으면서 지냈다고 말하면 넌 믿을까. 내가 널 그렇게 기다렸다고 말하면 넌 믿을까. 넌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성화야, 잠깐 볼래? 난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팔에 카디건을 걸치고 집에서 뛰어나갔다. 홍중아, 홍중아.
“오랜만이다, 그치.”
오랜만에 본 네게선 얼핏 술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술이나 담배 이런 거랑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런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넌 춥지도 않은지 얇은 면티에 반바지를 입은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나도 모르게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그대로 네게 입혀줬다. 그러자 넌 날 쳐다보며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골목에서도 붉게 달아오른 네 얼굴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선명하게 달아오른 네 눈가. 눈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얼굴. 다시 까만 부분 없이 하얗게 색이 빠진 머리칼. 넌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니 결국 얼굴을 무너뜨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성화야, 나 무서워. 나 진짜 무서워.
“나는 안 보일 거래. 그렇게 묻혀서 잊혀질 애래. 아무리 꽃처럼 물들이고 꾸며도 한 계절 못 버티고 질 거래. 해도 안 될 거래...”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내가 보이지 않아. 마치 세상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아. 나 너무 무서워. 네가 봐도 그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건 넌데 세상이 무너진 기분을 내가 느꼈다. 내 발밑으로 온 세상이 무너져서 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엉엉 우는 널 꽉 끌어안았다. 네가 찾을게. 온 세상이 널 가려도 내가 널 찾아낼게, 홍중아. 너는 날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반바지 밑으로 퉁퉁 부어오른 네 발목이 아플까 봐, 한참을 울고 난 뒤에 네 눈이 아플까 봐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네게 겨우 온기만 전해줄 수 있었다. 그만하자고, 여기까지 온 거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넌 굉장한 사람이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네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 말로 넌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러다가... 나 너무 무서워.”
난 나도 모르게 널 품에 안은 채로 네게 입을 맞췄다. 미끈하고 부드러운 혀가 느껴지자 넌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눈을 감고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조금은 덥고 조금은 쌀쌀한 가을밤 아래서 우린 그렇게 짭짤하게 입을 맞췄다.
그 후로 다신 널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봄에 잠깐 달콤한 꿈을 꾼 걸지도. 난 네가 없는 동안 겨우 재활에 성공해서 1년 늦게 체대에 들어갔고 가끔 어깨가 시큰할 때면 내 어깨를 붙잡고 네 일처럼 아파하던 널 조금씩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디 가서 널 안다고 할 수도 없었기에 나 혼자만의 추억으로 널 마음 한편에 품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야구선수가 아니라 체육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서 헤매는 어린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때 우리의 봄처럼.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커다란 전광판을 마주치게 되었다. 얼핏 옆눈으로 본 얼굴이 익숙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나는 눈이 멀 것처럼 화려한 빛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큰 화면 속 너는 빛나는 모습을 하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여전히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채로. 세상의 모든 빛이 마치 네게서 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의 행복 홍중아, 생일 축하해-.’ 나는 네 입으로 들어보지 못한 네 생일을 이렇게 축하하게 되었다. 네게서 아직 듣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오늘이 네 생일이구나. 생일 축하해.”
.
“이름이 별 성에 될 화라고? 별이 되다네? 진짜 멋있다.”
너는 다 마신 우유갑을 매만지며 내 이름을 듣더니 한참을 신나서 조잘거렸다. 아마 네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그랬겠지. 내가 우유갑을 손에서 뺏어 버려주자, 넌 신발 끝으로 운동장 모래 바닥을 툭툭 치며 즐겁게 이야기를 풀었다. 내 이름도 그렇게 멋진 이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아쉬운 듯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홍중아, 난 사실 알고 있었어.
넌 항상 빛나고 있었다는 걸. 안녕, 나의 작은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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