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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蝶夢 上>, 희재

  • 작성자 사진: 계간 성홍
    계간 성홍
  • 2022년 3월 21일
  • 20분 분량



* 아포칼립스




 그해 봄은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까지도 이상한 기시감에 찌들어 있는 그런 묘한 봄이었다.

 김홍중은 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봄의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분홍색이 김홍중에게 안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김홍중은 화사하다면 화사한 여러 색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김홍중은 봄의 따사로움을 경외했다

 김홍중의 속은 시커멓게 곪아 있었기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은 생각도 않고 유일한 꿈 하나에 맹목적으로 목매듯이 열중했다. 좋은 작업실 조금 싼 가격에 얻어 쓰는 대신에 돈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겠다고 치안이고 시설이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빌라 단칸방에서 눈을 붙여야 했다. 때로는 물도 시원찮게 나오거나 온도 조절조차 제대로 안 되는 거지 같은 원룸이기는 해도 김홍중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집에는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을 수준이었으니 대충 이부자리 깔고 눈만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햇볕 드는 창문도 제대로 없는 작업실에서 홀로 자리 잡고 앉아 장비나 만지작거리다가는 이내 형광등이 내뿜는 인조적인 빛 아래 시야를 의지하며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써 내려간다.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이 끝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펀치 라인은 이미 썼던 거니까 재미없을 거고. 이런 가사는 너무 진부할 거고. 이렇게만 가면 너무 심심할 거고. 애당초 이 흐름이 맞는지 확신도 없는 채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쓴 글귀 중 가사로 건진 문장이 단 두 줄이었다. 두 줄. 몇 시간도 아니고 그냥 하루 온 종일 시간을 들여서 건져낸 게. 이렇게 난관에 부딪힐 때면 김홍중은 이따금씩 그냥 지구가 통째로 망해버릴 위기에 처할 법한 큰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나만 힘들지 않고 다 같이 힘들기라도 할 테니까. 근데 그 큰일도 그냥 딱 사람들이 죽지 않을 정도였으면 좋겠어. 나도 이게 좀 힘들다고 죽지는 않았으니까.

 어느덧 시계는 오후 열한 시 남짓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전화 진동. 김홍중 어디냐 설마 아직도 출발 안 한 거 아니지? 형 지금 도착 5분 전이다 형보다 늦게 도착하면 오늘 니가 쏘는 걸로……. 얼핏 보인 미리 보기 메시지 읽다가는 그냥 화면 꺼버리고 주머니에 휴대전화 찔러넣는다. 평소 같으면 한참을 더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래도 집중 깨지지 말라고 온종일 밥 먹을 짬도 안 내고 앉아 있었던 탓에 이제 와서 좀 출출하니 그건 그나마 좀 다행이었다.

 작업실에서 자취방으로 향하는 큰 길목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있다. 술도 잘 못 하거니와 이런 자리 싫어하는 김홍중은 본의 아니게 이 포장마차의 단골 손님이었다. 오늘처럼 허구한 날 김홍중 불러다가 사줄 테니 술 동무 좀 되어 달라 하는 친한 형 덕분에. 지금 저 좋은 작업실을 값싼 가격으로 얻어 쓸 수 있게 가장 크게 도와준 장본인이라 쉬이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붐비는 편은 아니고 오히려 적은 편이라 좀 나았다. 맨날 손님이 이 정도 인원이라면 장사가 제대로 되긴 하는 건가 생각도 종종 들 정도로.


 “형. 저 왔어요.”

 “넌 내가 10시 59분에 딱 도착해서 봐주는 건 줄 알아.”

 “어차피 맨날 그런 식으로 말만 하고 봐주잖아요. 한두 번인가.”

 “그래 봐주는 거 알면 일찍 일찍 좀 와 인마.”


 생각 좀 해 보고. 일부러 얄밉게 말하며 앞자리에 앉는다. 이미 테이블 위에 자리 잡은 마른안주 입에 넣고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불러냈나 표정 읽어내려는 마음으로. 그러나 마주치는 형의 얼굴에서는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눈. 김홍중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진다. 이 형은 좀 낄 거면 자연스러운 색으로 하지 뭘 저렇게 이상하고 튀는 분홍색 렌즈를. 저런 거 구하는 게 더 힘들겠다. 숨김없는 표정으로 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앞에서는 태연하게 물어왔다. 표정 왜 그러는데 또. 그 한 마디가 신호탄인 양 김홍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우다다 말을 뱉어냈다.


 “형 근데 눈은 왜 그래요?”

 “눈? 뭐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한테 새삼스럽게 시비네 이거.”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웬 렌즈? 내가 형 그런 색 안 어울린다고 말했잖아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렌즈를 왜 껴.”


 기묘한 소통 오류에 김홍중의 눈살이 조금 더 찌푸려진다. 조명을 받아 동공이 다른 색으로 반사되어 빛나는 것이라 여기기엔 주변 조명은 전부 흰 전등뿐이었다. 그리고 얼굴 다른 부분에는 그런 분홍빛 그림자가 지는 것 하나 없이 눈동자만 인위적인 색을 띠었고.

 아니. 폰 켜서 겨울 봐봐요. 안주 질겅대며 말하면 얼마 안 있어 의아함보다는 이젠 짜증스럽고 퉁명스러운 말대답이 들려왔다. 김홍중 눈에는 여전히 분홍빛 띄우고 있는 그 기묘한 눈동자가 김홍중을 꼬나보았다.


 “멀쩡하게 검은색이기만 하고만 뭐. 너 피곤하냐? 김홍중 너 설마 또 밤샘 작업 이딴 짓 한 거 아니지.”

 “…….”

 “진짜 또 밤 새웠냐. 너 형이 그러다 몸 골로 가는 거 진짜 한순간이라고,”

 “밤 안 새웠어요. 그냥 오늘 하루 종일 신경 많이 써서 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서 왜 불렀는데요 오늘은.”

 “아 그러냐. 어린 게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냐. 비타민 좀 챙겨 먹고 그래라, 밥도 잘 먹고.”


 그래서 오늘 왜 부른 거냐면. 야 근데 너 말하는 꼬락서니가 오늘따라 좀 더 싸가지가 없다? ……김홍중은 아예 대놓고 형의 눈을 피했다. 예쁘지도 않은 눈이 거슬렸다. 안주와 술잔에만 시선을 꽂았다. 평소 같으면 생각도 없었을 술이 오늘따라 묘하게 잘만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중요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술이 땡길 정도로 쓴 인생사가 생긴 것도 아니었단다. 그냥 딱히 다른 이유 없이 단순히 술이 마시고 싶어서 대낮부터 오늘 밤에 같이 술 마시자고 그렇게 약속을 잡아댄 것이었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형은 올해 벚꽃이 유독 빨리 개화한 것 같다고 그랬다. 봄이라는 계절에는 관심이 영 없어서 딱히 자각을 하진 않고 있었는데. 투명한 비닐 너머로 벚꽃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거리를 보다가 떠올린다. 보통 벚꽃은 사월 초쯤에 슬슬 개화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벌써 벚꽃잎이 마구잡이로 떨어지고 있네. 그러다 언뜻 본 형의 눈에서는 여전히 형형하게 분홍빛이 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보다 더 벚꽃잎을 닮은 분홍빛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형 눈 진짜 렌즈 낀 거 아니에요? 누가 봐도 분홍색인데 지금.”

 “너 때문에 아까부터 계속 그 말 듣고 의식하니까 그런가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인다 야, 핑크빛으로.”

 “아니 근데 진짜라니까 그러네. 폰으로 거울 다시 봐봐요.”

 “됐다고.”


 거의 만취 직전으로 뻗어가는 와중에도 희미하게나마 약속 지킬 정신머리는 남아 있는지 계산 끝마치고는 저 멀리서 봐도 술 냄새 풍기는 듯한 발재간으로 포장마차 밖으로 나서는 형 뒷모습 보며 한숨이나 쉬었다. 한두 잔 겨우 마시고 멈춘 김홍중과는 다르게 앞에서는 쉴 틈도 없이 꼴딱꼴딱 술잔 잘 꺾어준 덕에 김홍중은 취해서 몸 무겁게 늘어진 개 한 마리…아니 성인 남성 한 명 어깨동무해서 부축하고 낑낑대야 하는 신세를 져야만 했다.

 봄바람 좀 맞으며 걷다 보니 뒤늦게 서서히 정신 차려가는 형이 돌연 말했다. 올봄은 황사가 심해서 그런지 목이 참 아프고 간지럽기도 하고 숨통이 콱 막히는 느낌이라고. 지금도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다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괜히 어떻게 처치를 도와주지 못하고 어쭙잖게 등이나 몇 번 토닥여줬다. 그러는 와중 의아함이 들었다. 목감기 이상으로 숨이 막히는 듯한 이상한 인후통 증상을 느끼는 것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게. 올해는 참 이상한 봄이구나 싶었다.

 형이 내일 시간 나면 작업실 놀러 갈게. 됐고 집이나 제대로 걸어 들어가세요. 대충 갈림길에서 등을 떠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김홍중은 그냥 생각이라는 것을 머리에서 지웠다. 차라리 오늘 이렇게 어질어질하게 잠들고 내일 눈을 뜨면 개운해져 있기를 바랐다. 씻고 나왔는데도 몸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술 냄새는 제가 풍기는 것인지 배어온 향이 아직 남아 있는 건지. 눈을 감으면 보이는 암흑을 잔잔하게 바라보며 김홍중은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본 소식은 형의 부고 소식이었다.


 사인은 호흡곤란이며 최초로 시신을 발견한 위치는 원룸촌의 길목이었지만 실질적인 타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외상으로만 봤을 땐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인 흔적이라곤 전혀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고. 유감스럽게도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였다면 아마도 그것이 유력한 사망 원인일 것이라 말했다. 날이 밝으면 작업실로 놀러 오겠다던 형의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히 함께 이런저런 대화 나누며 걸었던지라 형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장례식장 복도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종종 묘한 대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직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뜬금없이 호흡곤란으로 죽은 게 의아하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형의 장례를 찾아온 문상객인 줄 알았으나 들어가는 곳이 몇 번씩이나 각자 다 달랐다.

 이상함을 느낄 때쯤 김홍중의 시야에서 어떤 여자가 갑작스럽게 제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멀쩡한 여자가. 주변에 관심머리 없는 김홍중이 그 여자를 똑똑히 기억하는 이유는 시끄러워서도 있지만. 어젯밤 보았던 형의 분홍색 눈동자가 똑닮았다는 이유가 컸다.

 장례식장은 삽시간에 여러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와 비명으로 소란스러워져 갔고 여자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끝내 미동도 없이 손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김홍중은 겁에 질린 채로 멀찍이 앉은 자리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가. 삽시간에 평온해진 그 얼굴이 여자의 죽음을 확신시켜주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 자리를 도망쳐 빠져나와 헛구역질을 해댔다.

 흡연 부스 쪽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너는 장례식장을 오는데 렌즈를 끼냐 개념 없이. 뭔 헛소리야. 니 눈깔 존나 분홍색이야. 말투만 다르지 어젯밤의 자신과 다를 것 없는 기시감 가득한 대화. 그리고 바로 옆에서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호들갑 떠는 중년들.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그들의 휴대전화에서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유행병의 발생.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비롯한 계절상 봄을 맞이한 국가들을 기준으로 급성적으로 발병하고 있는 바이러스. 전례도 없거니와 발병 원인과 감염 경로 모두 미확인 상태인. 그러니 당연히 치료법과 백신은 개발되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발병되었고 치사율이 무려 약 98%에 달하는 그런 유행병.

 전국 긴급 재난 사태가 내려졌다.

 3월 21일. 바야흐로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옥의 시작이었다.




 질병관리청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고 사람들은 무능한 정부라며 한 마디씩 욕을 던졌다. 그런 부정적인 말이 오가는 중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예고도 없이 이름도 모를 유행병에 감염되어 곧 다가올 죽음을 선고받는 사람들, 아무리 연구해도 발병 원인은커녕 감염 원리조차 파악할 수 없는 바이러스.

 사람들은 주요 증상으로 눈이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벚꽃과 닮았다며 마음대로 벚꽃 바이러스라 이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봄이라는 계절과 가장 근접한 원인이 있는 것이라 추정된다는 이유로 웨르눔 바이러스라고 명칭을 결정했다. 약칭 웨르눔 또는 웨르비드, 혹은 속칭 벚꽃 바이러스. 길거리에는 그저 잠시 잠든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시체들이 쌓여갔다.

 지구가 망해버릴 만큼 한 번 정도 큰일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이렇게 사람 생사 단체로 오갈 정도로 좆 되는 건 안 바란다고 분명 빌었었는데. 김홍중은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세계가 이런 판국에 작업실에 나가서 곡을 쓰는 짓이야말로 다 무쓸모인 것 같으면서도 그게 아니면 굳이 살아가는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텔레비전을 틀어도 인터넷을 틀어도 사람들은 모두 웨르눔 바이러스에 대해서만 떠들어댔다. 당연한 처사였다. 언제 누군가가 갑자기 죽을지 모르고 심지어 그 누군가가 본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모두의 관심은 웨르눔 바이러스에 쏠려 있었다. 김홍중 역시 초반에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작 며칠. 일주일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람들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차라리 인생 덧없는 거 증명됐으니 막살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라며. 어느새 점점 거리는 무법지대가 되어갔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김홍중은 점점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정확히는 연락을 끊은 건지 또는 연락이 끊긴 건지도 모르는 인연들을 김홍중은 더 이상 되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열흘을 넘게 칩거 아닌 칩거 생활을 했다. 물과 음료수로만 가득 차 있던 작업실 내 작은 냉장고에는 이제 바이러스 첫째 날 작업실 바로 앞 편의점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집어온 도시락 몇 개가 차곡히 쌓였다. 입 짧은 김홍중은 입맛에 별로 맞지도 않는 듯한 제육볶음 도시락 몇 입 깨작깨작 먹다가 오늘도 수저 금방 내려놓았다. 밥은 모르겠고 갑자기 단 게 땡겼다. 음료수는 이제 없는데. 통 움직이지를 않으니 뻐근하다 못해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스트레칭 했다. 편의점 문 열기는 했겠지. 이제 세상이 반은 뒤지고 반은 정신줄 놓은 느낌이라 이런 것 하나까지도 걱정이 많아졌다. 편의점 안 하면 다음으로 가까운 편의점 또 찾아 나가기 귀찮은데 그냥 하나 쌔벼야 하나 말도 안 되는 듯 말이 될 듯한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며 작업실 건물 밖 계단으로 내려가 나서는데


 “저기….”


 작업실 있는 이 층에서부터 성큼성큼 계단 다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어떤 남자가 멀뚱히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김홍중을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인 양 눈이 마주치자마자 잠긴 목으로 김홍중을 불렀다. 조용히 무시하고 옆으로 빠져나가기에는 거슬리고 비키라는 말을 뱉기엔 신경 쓰였다. 예쁘장하게 생긴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울듯이 김홍중을 바라본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이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결국 비켜나가지도 무시하지도 못한 그 남자와 계속 눈을 마주 보고 있노라면 남자는 뒤늦게 머쓱해 하며 우물쭈물거렸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떠한 말도 못 꺼내고 있는 사람처럼.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분홍색 머리. 김홍중은 누구인지도 모를 그 남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뒤통수로까지 남자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코앞 편의점으로 향하는 내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볼 때마다 곧장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그 자리 그대로에 서서 한 걸음도 떼지 않았다. 염려했던 것이 무색하게 무사히 원하던 음료수부터 도시락까지 끼니는 며칠 더 거뜬히 이어갈 수 있을 양만큼 두둑하게 사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며 나왔을 때도.

 얼핏 보기에도 너무 마른 체형이었다. 울망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건진 모르겠어도 정말 김홍중이 툭 치면 그대로 풀썩 쓰러질 것만 같을 정도였다. 항상 영리하게 자기 몫 잘 챙기고 싹싹한 김홍중이라지만 은근하게 못 하는 일이 남의 부탁 과감하게 거절하기와 누가 봐도 상태 안 좋아 보이는 사람 그냥 지나쳐 가버리기인지라. 김홍중은 한숨 한 번 푹 내쉬고서 아무 말 없이 제 얼굴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남자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저기요.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그……이거 갖고 계세요.”


 갑자기 김홍중 앞으로 대뜸 내밀어지는 작은 손수건 하나. 깔끔한 단색의 노란 파스텔톤 손수건은 누가 봐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부러 푹 적시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스럽고 찝찝한 눈으로 손수건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자 남자는 황급히 그냥 물에 적신 것이라며 김홍중의 손 위에 억지로 손수건을 쥐여주었다. 그리곤 줄행랑 치듯이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또라이 새끼인가?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신줄 놓은 사람 한둘이 아니라더니 진짜로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만나는 거 보니까 심각하긴 한가 보네. 분홍색 뒤통수와 연노란색 손수건.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손수건이 눈에 자꾸 밟혔다. 원래 같았으면 의심스러워서 땅바닥에 던지든 쓰레기통에 집어처넣든 하고 신경 껐을 텐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이상한 직감이 자꾸 머릿속을 지배했다. 결국 김홍중은 비닐봉지 안에 대충 손수건을 던지듯 집어넣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쓰지도 않던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 갑작스러운 피곤이 몰려왔다.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만 하나 꺼내 대충 목을 축이고서는 작업실 소파에 몸을 구겨 누웠다.


 그렇게 얼마 정도가 지났을까. 선잠에 들었던 김홍중이 시끄러운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뜬 순간 앞이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매스꺼운 가스 냄새와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속을 뒤덮었다. 정신없이 비몽사몽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옛날에 학교에서 틈만 나면 화재 대피법 배웠었는데. 어릴 때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여러 번 봤었는데. 막상 현실로 들이닥치니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기분이었다. 나 씨발 호흡곤란도 아니고 그냥 타 죽거나 질식사하는 거 아니냐…. 혼미해지려는 찰나 거세게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거세게 들려왔다.

 손수건으로 입 막고 자세 낮추고 나와! 낯설면서도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김홍중의 귓가에 꽂혔다. 아니 손수건 같은 게 여기 어디 있겠냐고……, 생각하는 찰나 휴대전화와 그 옆에 있는 정리도 제대로 안 해둔 편의점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 갖고 계세요. 분홍머리 남자의 모습과 물에 젖어 축축한 손수건이 뇌리를 스쳐 지났다.

 대충 바지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꽂아 넣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손수건에 묻어 있는 것이 물이 아니라 무슨 약품이라도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죽는 위기에 처하겠지만.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미 가스를 많이 마신 건지 몸은 점점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한참 낮게 숙인 자세로 힘겹게 문으로 다가가 도어락을 풀었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김홍중의 몸을 누군가가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삽시간에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 김홍중의 눈에 들어온 마지막 것은

 아직도 울 것 같은 얼굴이지만 눈물은 끝까지 흘리고 있지 않은

 정체 모를 이상한 분홍머리 남자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응급실 천장이었다. 병원 천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용케도 안 뒤졌네 그런 생각보다는 아 좆 됐다 응급실이면 비쌀 텐데 하는 생각. 콜록거리며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면 천장만 보이던 시야에 다른 무언가가 불쑥 들이닥쳤다. 또 그 분홍머리. 김홍중이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 좀 들어요? 괜찮아요? 일어나지 말고 누워 있어요, 의사 선생님 불…”

 “불 네가 질렀냐?”

 “…네?”

 “그리고 머리 아프니까 호들갑 떨지 마.”


 김홍중은 굳이 따지자면 생명의 은인쯤 되는 사람에게 날을 세워댔다. 제대로 예의 갖춘 존댓말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전부 이상한 일뿐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를 한참 동안 빤히 보더니 뜬금없이 손수건을 주고. 얼마 안 지나 김홍중은 그 손수건으로 겨우 의식 안 잃고 문까지 열어서 살 수 있었고. 문도 그렇게 열기만 하고 쓰러졌으니 혼자였다면 그대로 죽음이었을 텐데 거기서 또 이렇게 살려준 것도 이 정체 모를 남자였다.

 네가 불 질러놓고 나 구해준 거 아니야? 남자는 벙쪄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어댔다. 지랄. 의심 가는 짓 다 해 놓고 아니라고만 하면 다인 줄 아나. 멱살을 잡을 힘도 화를 낼 힘도 없었다. 본인이 구해준 사람에게 날이 선 말을 들어대면서도 남자는 김홍중의 곁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냥 좀 누워서 몸이 나아지는 대로 회복 다 됐으니 집에 가겠다며 퇴원 절차를 밟았다. 창구에 카드를 내미는 손이 살짝 떨렸던 것도 같지만 그냥 죽을 고비를 넘긴 이 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충격이 가시지 않아 그런 것이라 스스로를 속였다. 웨르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나서부터는 매일을 당장 죽더라도 여한 없을 사람처럼 살았으면서. 카드가 김홍중의 손으로 돌아올 때는 커다란 영수증이 함께 쥐어졌다. 환자 성명 김홍중, 진료 일자 2022년 4월 3일, 그리고 청구 금액……, 예상에도 없던 지출에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폐까지 딸려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작업실이 아닌 자취방으로 향해야만 했다. 화재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해도 창문도 없고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홀로 고립된 밀실이나 다름없는 작업실에 그 정도로까지 연기가 다 새어 들어왔다면 그 건물은 이제 가 봤자일 것 같아서. 집으로 향하는 내내 분홍머리 남자는 김홍중을 따라왔다. 음침하게 스토커마냥 저 멀리서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거의 김홍중의 바로 뒤에서. 근데 존나 찌질하고 답답하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화가 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대로 반 바퀴 돌아 남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왜. 우리 집에도 따라와서 불 지르게?”

 “불 내가 지른 거 아니야.”

 “그럼 누가 질렀는데. 그 건물에서 불날 거 미리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한테 손수건도 주고 나 구하러도 오고. 네가 지른 거 아니면 너는 어떻게 알고 있었는데.”

 “나는 너 구해주러 온 거야.”

 “지랄. 초면에. 이 시국에 이 사달 나서 내가 너 신고 안 하는 건 줄 알아. 어차피 곧 다 뒤질 거니까.”


 이제는 진짜 오늘내일하다가 죽을 때가 되었나 별 또라이 새끼를 다 상종해보네 살면서. 더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오지 말란 으름장을 놓기엔 이미 골목 하나만 더 돌면 시야에 집이 보일 만큼 다 도착한 후였다. 들으란 듯 크게 한숨 쉬고 마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뗐다.

 현관 앞에는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별말을 꺼내지 않아도 익숙하게 경찰청 마크가 박혀 있는 공무원증을 보여주었다. 건물 방화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해 찾아온 형사들이라고 했다. 방화라는 말을 듣자마자 분홍머리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새끼가 진짜 불 지른 게 맞구나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형사들은 예상외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 말을 들을수록 김홍중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건물 일 층에 있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이 웨르눔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미쳐버려서 불을 질렀다는 말이었다. 그 분홍머리 남자의 만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CCTV 영상에 뭐에 증거와 정황은 이미 충분해 별달리 무거운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가볍게 묵례를 하고 떠나는 형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저 멀찍이에 또다시 분홍머리 남자가 보였다. 어김없이 김홍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사들도 분홍머리 남자의 정체에 대해 물었지만 김홍중은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감추기에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는 것이 전혀 없어서. 마주쳐오는 눈을 피하지 않고 작게 턱짓을 했다. 분홍머리 남자는 우물쭈물대면서도 천천히 김홍중의 앞으로 걸어왔다.


 “너 진짜 뭐야?”

 “그러니까 내가 불 지른 거 아니라구 그랬잖아….”

 “너 누군데.”

 “…….”


 갑자기 앙탈 부리더니 이번엔 또 입 딱 다물어버린다. 분홍머리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김홍중의 눈치를 보았다. 말하면 믿어줄 거야…? 한참을 입 다물고 있다가 겨우 꺼낸 말이 그거였다. 일단 말해 봐. 얼마나 개소리하는지 들어나 보고. 그리 말하면 또렷하게 시커먼 눈동자로 김홍중을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눈이 아니라 머리가 분홍색인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을 봄이라고 명명했다.


 진짜 또라이 새끼가 맞았구나…. 김홍중이 헛웃음을 치자마자 남자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곧바로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불쌍한 표정 짓는 거 봐라 또.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홍중은 무어라 따박따박 따져 들어갈 만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지는 건가 싶었다. 갈 곳은? 세 글자 질문에 봄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따라와. 그 말에는 주인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김홍중의 뒤를 졸졸 따랐다. 어쩌자고 신상 하나 모르는 수상하고 이상한 남자를 집 안으로 들이는 건지는 김홍중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대충 생명의 은인을 의심하고 범죄자로 몰아갔던 방금 전까지의 제 행동이 미안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굴고 있는 거겠거니 싶었다.

 집에는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급한 대로 옛날에 사둔 컵라면 두 개를 꺼냈다. 일단은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거지 김홍중은 애당초 입맛도 안 돌았던지라 한두 입 깨작깨작 면 끊어먹다가 말았다. 그 앞에서 남자는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허기지기라도 했는지 김홍중이 남긴 몫까지 깔끔하게 다 먹었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 시선 느끼고 괜히 수줍게 웃는 꼴이 조금 웃겼다. 정말로 뭐 하는 자식인가 싶기도 하고.


 “저기…,”

 “김홍중.”

 “어?”

 “이름 김홍중이니까 앞으로 이름으로 알아서 부르라고. 근데 그래서 네가 왜 봄인데.”

 “내가 봄이니까.”

 “뭐. 이름이 봄이야?”

 “음…아니. 이름은 없어.”


 뭐라는 거야. 가늘게 뜬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 남자는 알아서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김홍중의 정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이름이 김홍중인 거고. 저기 액자 속에 있는 건 강아지고 그 강아지의 이름이 조이인 거고. 그런 것처럼 자신의 정체는 봄이고 고유한 본인만의 이름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네가 왜 봄이냐는 질문에는 자동응답기처럼 내가 봄이니까, 라는 답답한 대답으로 일관해댔다.

 이름이 없으면 널 어떻게 뭐라고 불러. 봄이라고 불러? 그러면 남자는 싫다고 입술을 삐죽였다. 사람들이 이제 다들 봄을 싫어하게 되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면서. 웃기는 소리 같기는 해도 일리 있는 말이라 알겠다고 했다. 봄이라는 호칭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생긴 게 딱 분홍색부터 눈에 들어오는 게 제법 봄을 닮기는 했으니까. 대신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받아볼 일 없었을 것 같은 부탁을 받으니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김홍중 마음도 모르고 봄이라는 놈은 눈빛을 반짝여댔다. 마주치는 시커먼 눈이 동그란 것이 토끼를 닮았다 싶다가도 깊은 건 또 우주를 담았나 싶기도 했다. 김홍중은 그 눈을 처음으로 피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날이 밝으면 그때 제대로 생각해서 지어주겠다 약속했다.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진 컵라면 용기와 나무젓가락을 싱크대 옆에 대충 올려두고 잘 준비를 했다. 동일한 디자인에 포인트 색상이 다른 칫솔을 하나 새로 꺼내서 주었다. 침대도 없는 작은 방바닥에 이불을 겹겹이 쌓고 오늘 처음 본 남자와 같은 이불을 덮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남자로부터 등을 졌다. 잠들기에 편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바로 잠자리에 들 마음은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 자 홍중아.

 그런 말이 들려왔다.

 처음 들으면서도 왜인지 그리운 느낌이었다.




 언제 잠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게 눈을 뜨면 창밖으로는 중천에 뜬 해가 보였다. 눈 부신 햇살에 오만상을 쓰고는 기지개를 쭉 켜면 입에서는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깨워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느지막하게 눈을 뜨는 것까지는 익숙했으나. 잘 잤어? 다정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김홍중은 기지개로 앓던 생목소리 그대로 으어억 우스운 소리를 냈다.

 상대 쪽도 만만찮게 그 소리에 당황한 건지 잠시의 정적이 일었다. 귀를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끓는 소리. 요리라도 하고 있던 모양인지 냄비가 올려진 가스레인지 불이 켜져 있었다. 어제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크게 자각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을 보니 괜히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좋지 않은 기분에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나와 홍중아. 밥 거의 다 했어. 아까 아침에 앞에 나가서 사 온 재료로 차려봤는데 된장찌개 괜찮지? 누가 보면 이 집에서 몇 년은 같이 살아온 안사람처럼 뻔뻔스럽게 말을 했다. 이 방에 처음 발을 들인지 겨우 열 시간도 안 넘었을 것 같은 게. 대충 으응 대답하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음식 비주얼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집에다 우렁각시를 들인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유롭게 씻고 나와 접이식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잘 차려진 밥 먹으려다가 입가에 수저 가져다 대자마자 들려오는 말 한마디에 그대로 일시 정지된다.


 “내 이름은 생각해봤어?”

 “……어, 어.”


 내 이름 뭔데? 그게 그러니까…. 잠들기 전까지 고민을 해보다가 눈을 감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질문은 다짜고짜 찾아온 봉변이었다. 기대에 가득 찬 저 눈빛은 밤이 끝나고 날이 밝으니 더 반짝이며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이제는 눈을 피한다고 시간을 더 미룰 수도 없을 것 같아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성화.

 반짝이는 검은 눈을 보면 우주의 별을 빼어다 박은 것만 같아서

 네 머리를 보면 네가 봄의 꽃을 이루는 존재인 것만 같아서

 별 성에 꽃 화


 그렇게 星花라고 멋대로 이름 붙였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와도 괜히 말하기가 쪽팔려 입을 다물었다. 몰라도 돼. 궁금하면 너 알아서 생각해. 그리 말해도 잠깐 서운한 표정 짓고 말았다. 처음 봤을 때는 계속 울 것 같은 얼굴만 하고 있길래 그런 표정밖에 못 짓는 줄로만 알았더니 기본값은 그냥 바보처럼 헤실대며 웃고 있는 모습인 듯했다.

 그래도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사실 부끄러워서 말은 못 하겠어도 이름 뜻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뜻도 예쁘고 이름도 예쁘니 괜찮지 않나 의기양양해졌다. 나 이제 너 성화라고 부른다. 그냥 선언하듯이 말하면 앞에서는 신나서 고개 끄덕거렸다. 봄이 아니라 성화라는 이름을 얻은 게 그리도 좋은 모양이었다.


 “근데 성은 뭐로 해?”

 “김 이 박 중에 하나 골라. 아, 아니다. 나랑 똑같은 성씨 하지 마. 그냥 좀 그래. 이성화랑 박성화 중에 골라 봐.”

 “김성화는 안 돼?”

 “어. 안 돼.”

 “그럼…박 씨 할래. 이것도 김처럼 받침 있는 건 똑같으니까.”


 맨날 아예 거르거나 대충 깨작깨작 챙겨 먹던 밥을 간만에 든든하게 배 채우며 웃었다. 나도 나지만 너도 참 단순하다. 네 이름 정하는 건데. 그럼 너 이제부터 박성화 해. 그리 말하면 또 잔뜩 마음에 든 행복한 얼굴로 고개 연신 끄덕거렸다. 아직 제대로 된 정체 하나 모르는 낯선 이에게 이유 모르게 목숨을 빚지고 또 그 낯선 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 기이한 일을 겪으면서도 김홍중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근데 그냥 성 떼고 성화라고 불러주면 안 돼?”

 “그건 너 하는 거 보면서 생각 좀 해 보고.”


 오히려 박성화는 이 외로워진 봄에 김홍중이 운명처럼 새로이 만난 친구인 것만 같았다.



 하루 사이에 박성화에 대해 알게 된 정보는 꽤 많은 듯하면서도 적었다. 본인을 봄이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그게 정확히 무어냐 물으면 박성화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이도. 그런 개념이 딱히 없다며, 만일 나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 나이는 잘 모르겠다고 그랬다. 어차피 정신 차려 보니 격해진 감정 덕에 반말 놓은 사이 된 겸 대충 동갑으로 대해달라고 했다. 그냥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게 대충 외계인 같은 거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는데 김홍중은 그게 더 싫었다. 박성화를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취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본인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게 잘은 안 됐지만.

 박성화는 사람들이 봄을 미워하게 된 것이 속상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모두가 증오하게 된 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래서 싫다고. 처음에는 가볍게 그냥 좀 정신 나간 사람 장단에 맞추어 놀아주는 거랍시고 고개 끄덕거렸는데. 어떤 의미로도 박성화가 정말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 같아서.

 고물단지나 다름없어진 듯한 휴대전화를 무료하게 만지작거리면 박성화는 관심을 보였다. 홍중아. 뭐. 그거 좀 잠시만 빌려주면 안 돼? 쓸 곳도 없거니와 애당초 쓰는 법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어차피 연락 같은 건 어디에도 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기대며 의지할 수 있는 가족다운 가족도 없었고 마음 놓고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는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애초에 모든 연락을 다 끊어버렸던 거니까. 해봤자 인터넷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것이 전부일 휴대전화를 순순히 넘겨주었다. 박성화는 휴대전화 화면 이것저것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만져댔다. 진짜 보통 인간 같은 존재가 아닌 거라면 저 손가락에도 지문이 있을까. 아무튼 사람 손가락으로 인식은 하나 보네 폰이.


 “네가 봄이면 웨르눔인지 나발인지랑도 관련 있는 거야 너?”

 “그렇지 않을까?”

 “그런 거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건 또 뭐야.”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서….”


 봄이라는 게 뭔지. 박성화가 뭔지. 근본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난제를 풀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고 보면 일단은 하룻밤 겨우 재워준 것뿐인데 박성화는 알아서 아침 일찍부터 출처 모를 경로로 장도 봐오고 식사도 차리고 다 했다. 심지어 밥 다 먹고 나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곧장 일어나서 설거지까지 한 번에 끝마쳤다. 그러는 뒷모습 보면서 진짜 보통 인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일단은 박성화가 집에서 나간다면 또는 박성화에 대한 의문이 말끔하게 풀린다면. 그다음에는 무얼 할까 집 안을 둘러보며 고민한다. 분명 김홍중의 돈으로 보증금 내고 김홍중의 돈으로 매달 꼬박꼬박 월세 내는 김홍중의 집인데도 이 환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고 참 볼품없는 공간이었다.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지내기에는 결코 좋지는 못할 것 같았다. 생필품이니 뭐니 웬만한 것들도 다 작업실에 있을 텐데.

 김홍중의 삶에서 가장 컸던 의미와 목표가 한순간에 불타올라 사라졌다. 지금 작업실로 가봤자 재가 된 꿈을 두 눈으로 목도할 게 분명했다. 웨르눔 바이러스로 세상이 망해가는 와중에서도 작업실에 앉아서 음악 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하면서 숨통 트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그게 다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순간 그냥 뒤져버릴까 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더 고민할 새도 없이 곧바로 결정했다.

 박성화에 대한 의문을 말끔하게 풀어 해결한 후에는. 더 이상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겠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자고.


 “그래서 너 가는 건 언제 갈 거야.”

 “나? 어딜 가?”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나. 하룻밤 재워줬으면 된 거지 안 나갈 거야?”

 “네가 이름도 지어줬잖아. 이름 계속 불러주려면 내가 네 옆에 머물러 있어야지.”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나 말고 다른 생존자들 많을 거 아냐. 그 사람들한테 이제부터 박성화라고 불리면 되잖아.”


 너 그런 핑계 둘러댄다고 안 통해. 부러 박성화의 얼굴을 시야 안에 두지 않고 말한다. 사실 안 통한다는 건 거짓이고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충분히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혹여라도 내쫓지 말아 달라고 그 특유의 울망한 눈으로 쳐다보면 거절도 못 하고 괜히 주변 자리를 내어줘야만 할 것 같아서. 죽을 뻔한 목숨 구해줬는데 하루 지내게 해준 걸로 퉁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서 순순히 머무르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리구 나 갈 데도 없어….”

 “나는 바쁘고 정신없어서 너 챙겨주고 재워줄 여유도 없어.”

 “왜 바쁜데?”

 “…….”

 “홍중아.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느낀 건데. 너 진짜 금방이라도 쓰러져서 죽을 사람 같아서 네 옆에서 못 벗어나겠어.”


 정곡을 찔린 기분에 이유 모르게 가슴께가 순간 따끔거렸다.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 같다는 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바로 직전까지 하고 있던 생각을 전부 꿰뚫린 느낌이었다. 너는 정말 악착같으면서도 은근히 내일 따위는 없어서 곧 죽어버릴 사람 같다는 말을 살면서 몇 번이고 들어왔지만. 언젠가 너는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분명 있었지만. 그렇게 들어왔던 말들과는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박성화 얼굴에 시선을 꽂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박성화는 잠시간 김홍중과 눈을 맞추었다. 조금은 애처로운 눈빛을 순간 마주한다. 박성화는 금방 시선을 피했다. 마저 휴대전화에 시선 꽂아버리고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휴대전화에서 아직 완전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대충 허밍 하듯 음색을 입혀 가이드해둔 곡에서는 김홍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클라우드에 연동해놓은 최근 작업곡이었다. 이거 노래 네가 만든 거야? 화제를 돌리려는 건지 박성화는 천진하게 그리 물어왔다. 김홍중은 밭은 한숨을 내뱉곤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 없이 말을 돌리는 게 피차 나을 것 같았다.


 “…그거 아직 다 안 쓴 곡이야. 가사도 없어.”

 “목소리만 들어가면 완성인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못 만들어? 작업실 없잖아.”

 “몰라.”

 “녹음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가사 써놓은 게 없잖아.”

 “써 주면 안 돼?”


 너는 무슨 노래가 써달라고 하면 뚝딱 나오는 건 줄 아냐…. 가뜩이나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 곤란하던 참에 머리 더 지끈거리게 만드는 부탁이었다. 물론 노래를 끝까지 완성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지만. 굳이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더라도 김홍중 스스로를 위해 마무리를 짓고 싶은 과제이기는 하지만. 김홍중이 잠시 망설이면 박성화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박성화를 생각하며 가사를 써달라고 그런다

 박성화를 위한 노래를 써달라고 그런다

 그 음악이 완성되면 떠나겠다며

 박성화는 지금껏 본 얼굴 중 가장 환하게 웃었고 동시에 가장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상으로나 날짜상으로나 이제 겨우 하루 봤는데 무슨 너를 위한 노래냐 물어도 박성화는 이미 확고했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못 떠나고 계속 김홍중의 옆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별로 안 그러게 생겨서는 이런 생떼는 어디에서 배워와 부리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결국 박성화의 성화에 못 이겨 인간도 아니라 하고 귀신도 아니라 하는 정체 모를 봄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름을 지어주자마자 다른 의미로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는 꼴이, 그리고 그 꼴에 휘말릴 대로 휘말리고 있는 제 꼴이 어이없고 웃겼다. 박성화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라도 챙기겠다는 것인지 웬만한 모든 집안일을 자처했다.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다 자기가 할 테니까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면서. 웨르눔 바이러스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까지는 알지 못해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꼭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러니 제발 죽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죽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티 낸 적도 없는데 박성화는 그냥 김홍중을 보며 그것부터 걱정했다. 무슨 김홍중의 죽음이 내일 당장 예견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종종 뜬금없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불안에 먹힌 박성화를 보는 것이 이상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살면서 오천만 번 정도 한 것 같기는 했어도 충동적으로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김홍중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열악한 상황일수록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빛을 보겠다는 독한 의지를, 그리고 그 의지의 원동력이 될 만한 목표를 늘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죽음이라는 겪어보지도 못한 일에 점점 친화적으로 되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김홍중은 본래 살 수 있으면 끝까지 숨은 쉬면서 살아남아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박성화를 내보내고 나면 차라리 뒤져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건 열흘간의 판데믹 상태가 낳은 예외의 결과였다.

 그 정도로 박성화가 함부로 김홍중의 죽음에 대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는데. 왜인지 박성화가 그렇게도 불안해할 때면 김홍중은 어떻게든 그 불안을 달래주고 위로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경험이 없어 서툰 손길과 목소리로라도.


 박성화는 최대한 집 밖에서 나가지 말자고 했다. 식량을 구하는 것이든 뭐든 외출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건 전부 박성화가 하는 걸로 정했다. 자신이 봄 그 자체라 주장하는 박성화에게는 웨르눔 바이러스의 영향이 가지는 않을 테지만 김홍중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분명 특정한 감염 경로가 있을 테지만 그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그 누구도 모르니 조심해야 했다. 그에 대해서는 박성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홍중은 아직 제대로 세상을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박성화는 세상이 몰라보게 많이 황폐해졌다고 했다. 길거리에는 심심찮게 상처 없이 멀끔한 시체들이 굴러다니고 그 죽음을 막을 도리가 없는 정부는 세 시간에 한 번씩 그 시체들을 치우는 작업이나 하고 있다고 했다. 어쩐지 응급실에서 나와 집으로 오던 길에서는 시체를 한 구도 못 봤다 했더니만 그때 역시도 시간상 웨르눔 바이러스 감염자의 시체를 쌓아가는 대형트럭이 막 그 거리를 지나간 직후였단다.

 원인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뭐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박성화가 내내 주장하고 김홍중을 설득하려는 의견이었지만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김홍중 역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박성화는 웨르눔 바이러스가 그 이름처럼 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불편하더라도 이번 봄만 더 버티고 나면 어떻게든 일이 잘 풀릴 수 있으리라고 김홍중을 안심시켜주려고 했다. 김홍중에겐 그런 게 필요 없었는데.

 박성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웨르눔 바이러스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떠들어댔다. 무조건 긍정적인 말만을 하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희망 가득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절망으로 시작을 했어도 무조건 마지막에는 희망을 채우고 싶어 했고 희망만 남기고 싶어 했다. 때때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데도 암울해 보였다. 웃고 있는데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끝마치고 나면 박성화는 늘

 나는 너랑 같이 살아가고 싶어

 그거면 돼 그거 아니면 의미 없어

 꼭 난데없이 그런 말을 했다. 박성화를 보면 생각이 많아졌다. 대충 가사 지어 노래 완성해주고 등 떠밀어 내다 보낼까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마음이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첫 가사부터 난관이었기에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도 아직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제는 불길에 타올라 사라졌을 노트 속 겨우 건져놓았던 가사도 김홍중의 머릿속에서 잊혔다. 별로 임팩트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문장이었나보다 생각하며 넘겼다.

 박성화를 닮은 가사에는 봄이라는 단어를 넣어주고 싶었다. 김홍중은 봄을 경외했음에도. 그 경외 속에는 공경심보다 두려움이 더 컸음에도. 그게 박성화를 이루는 말이라면 그 봄을 실어주고 싶었다.

 너는 왜 나랑 살아가고 싶어 해? 너는 어떻게 나를 알았고 나를 구해준 거고 나랑 함께하고 싶어 해? 왜 나야? 너는 정확히 누구인 거고 네게 있어서의 나는 정확히 뭐인 거야? 차마 목구멍 너머로 내뱉어 묻지 못할 수많은 질문들이 김홍중의 눈빛에 담겼고 박성화는 그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토끼 같다고 생각했던 눈이 이럴 때는 또 뱀을 마주하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박성화는 김홍중의 손을 잡았다. 봄 주제에 손이 차가웠다. 그래도 웃는 얼굴 하나만큼은 너무도 따뜻해서. 김홍중은 그 미소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런 봄이 말했다.


 그러니까 함께

 여름으로 가달라고






- 작가의 말



우리의 봄도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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