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ty Summer>, 꽃
- 계간 성홍

- 2022년 6월 21일
- 6분 분량
물류 공장 출퇴근 버스는 옆 동네를 구석구석 돌다가 성화가 사는 동네 입구까지만 운행했다. 이 동네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치안이 좋지 않고 몸에 용이나 호랑이를 품은 조폭의 구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기에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애초에 버스가 드나들 수 있는 도로조차도 없었다.― 그 동네의 입구에서 내리는 성화 뒤로 숙덕거리는 사람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첫 번째로 여기는 조폭이 건드리는 구역이 아니었다. 조폭도 돈 많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돈도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즐비한 달동네에 조폭은 일수를 쓴 두세 명에게 돈을 받으려 오갈뿐이었다. 성화는 고개를 꺾어 달이 걸린 동산을 바라봤다. 저 달 바로 옆, 가장 높은 곳에 성화가 살고 있었다.
택배 상하차 알바로 온몸을 쑤셨다. 익숙해질 때도 했는데 여전히 성화는 힘쓰는 법을 몰랐다. 게다가 오늘은 택배 상자를 잘못 잡아서 손이 온통 까졌다. 피가 조금 비치는 상처가 따끔거렸지만 성화는 약국이 아니라 대흥슈퍼로 향했다. 손은 오늘 밴드를 붙여도 내일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추억은 영원하니까. 성화는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오는 주인아저씨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비춰주고, 아이스크림 두 개를 구매했다. 예전에는 천 원에 두 개를 샀던 것 같은데 가격이 오르고 올라 이천 원에 두 개를 살 수 있었다. 언제 이렇게 가격이 올랐는지, 성화는 바쁘게 사느라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손목에 걸고 발걸음을 옮겼다.
성화가 이 달동네에 몸을 기댄 건 어느 영화에서 나올 법한 엄청난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살려고 보니까 숨 쉬는 곳이 달동네였을 뿐이었다. 시골에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어머니는 조금의 돈이라도 벌어보려 일을 시작했지만 병원비 지출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막 제대한 성화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서울에 마련한 자취방을 정리하고 일을 구하기 쉬운 번화가의 반지하로 집을 옮겼고,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돈을 벌기 위해 나갔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자잘한 상처가 생긴 성화의 손을 붙잡고 울었고, 성화는 괜찮다며 웃었다. 성화는 겨우 아버지를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 시켰지만 병원에서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며 포기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쥐어주었다. 길어야 일 년이라는 말에 성화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골의 집까지 처분한 부모님을 모시기에 성화가 버는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고졸에게 은행은 돈을 빌려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화의 집은 서서히 기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머니가 쓰러졌다. 성화는 번화가 반지하 집에서 달동네 판자촌으로 몸을 옮겼다. 불법으로 세워진 슬레이트 아래 사는 사람은 없었고, 거기도 집이라도 붙잡고 있던 부동산 중개인이자 집주인은 월세를 내주며 돈을 벌고 싶어 했다.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성화는 달동네에 조금은 쉽게―그렇다고 이걸 운이 좋은 인생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던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도 올해로 3년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된 채무는 상속을 포기했으나 성화의 이름으로 된 빚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차라리 아버지가 도박 빚이 많아 이렇게 됐으면 욕이라도 실컷 할 텐데, 세상은 성화에게 누군가를 욕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성화는 애초에 누구를 욕할 위인이 되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갔다. 몇몇은 성화가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했고, 몇몇은 이용해먹기 좋다고 했다. 성화는 주변에서 어떤 소리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이 살아가기 더 바빴으니까. 주위의 말까지 듣고 행동으로 반영하는 건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였다.
무거운 다리를 겨우 움직여 집으로 향하던 성화는 자리에 멈춰서 숨을 골랐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비가 내려 기온이 낮았는데, 이번 주부터는 난데없는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끈적한 습도,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더운 숨. 여기서 보내는 여름이 벌써 3번째인데, 도통 익숙해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칠 생각은 더더욱.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이대로 멈춰 있으면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릴 것을 알고 있었다. 성화는 뒤를 돌아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바라보다 다시 위로 향했다.
낡아서 별별 이상한 소리를 다 내는 대문을 열자 세 걸음이면 끝나는 마당 위 평상에서 성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네. 나름 마당이 있다고 자랑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재개발을 위해 집의 공간을 늘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이었으나 그는 이 자리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입으로는 좋다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성화가 늦은 밤에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까.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익숙했다. 오늘따라 버스가 안 왔거든. 성화는 아이스크림이 담긴 비닐봉지를 내밀었고,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성화는 그를 밀어내며 평상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는 건 익숙했다.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건데 왜 계속 사오냐는 잔소리는 1년하고 반년이 더 지나서야 멈췄다. 그가 먹지 않아도 성화가 알아서 다 먹더라. 음식이 남는 것이 싫어 괜히 잔소리를 하던 그가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그와 동거하며 그 시간동안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생활 반경은 어떻게 되는지, 주변 인간관계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성화가 알아본 그는 좁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성화가 집에 있을 때 나가서 먼저 돌아왔다. 애초에 성화도 밖에서 오래 일을 하고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서,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는 성화에 대해 손쉽게 알아챘다. 너 달달한 거 좋아하지? 떡볶이 좋아하지? 오는 길에 붕어빵 팔길래 사왔어. 팥은 내가 다 먹었음.
그는 성화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다가 하나를 거의 다 먹어갈 때쯤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따라 달이 커서 달동네 전부를 비추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살면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이런 시야였다. 성화는 그를 따라 달을 바라보다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오밀조밀하게 보여 사람 사는 소리를 내는 동네가 한 눈에 보였다. 분명 성화도 이 동네에 속해 있었으나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 믿어? 그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달에 사는 토끼나 바다 깊은 곳에 사는 크라켄이나 죽음 뒤의 이야기, 우주 정복 같은 것들. 성화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성화라고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가기가 바빠서 관심을 껐다. 성화에게 그는 유일하게 함께 상상하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성화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달에 사람이 닿을 수 있을까. 성화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갔잖아. 아폴로 11호. 그는 달에서 성화로 시선을 옮겼고, 성화는 그의 눈동자에서 오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공허함인지, 순서를 빼앗겼다는 허망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럼 화성에는 사람이 갔나? 아니, 거긴 못 갔지. 성화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평상 옆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성화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라도 하는 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허황된 이야기를 주절거렸을 그는 입을 다물었고, 성화만 속으로 안절부절 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다가 손을 뻗어 성화의 검은 머리칼을 헤집었다. 들어가서 자. 내일 또 일찍 나갈 거잖아. 그는 자신의 손길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는 성화를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는? 성화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고, 그는 더우니 밖에 더 있다가 들어가겠다며 문을 닫았다. 얼떨결에 방에 들어온 성화는 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깥에서 그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나는 화성에 닿을 거야. 그를 사랑하니까.
성화가 일을 나가기 위해 방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벌써 나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선 적은 없었는데. 성화는 그의 변덕은 종잡을 수 없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이렇게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훌쩍 사라진다. 그래도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처럼 이 평상 위에서 자신을 맞이할 거란 생각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일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들고, 높은 경사의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와 대문을 열었을 때,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성화의 시선은 빈 평상으로 굳게 닫힌 방문으로 옮겨갔다. 달동네 판자촌 그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성화는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평상 위를 손으로 훑었다. 해가 떠있는 내내 뜨겁게 달궈졌을 평상인데도 밤이 되면 차가웠다. 요즘은 밤에도 25도가 넘어간다면서 전부 거짓말 같았다. 성화는 평상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이 자리에서 늘 이런 달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나. 성화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움직였다. 물렁해서 잘 뜯기지 않는 빠삐코의 꼭지를 힘겹게 뜯고, 손에 묻은 것을 대충 핥아 먹고, 살얼음에서 물이 되기 직전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실없는 생각이나 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였으나 성화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선호한 성화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떠나가는 건 한 순간이고, 기억하는 것은 영원이다. 아마 그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말도 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겠지, 아마 아르바이트에서 무슨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붙잡혀 있는 것이겠지, 아마 이 자리에 오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생겨서 그랬겠지. 따지고 보면 성화도 주변에 말없이 떠나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을 함께 했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갑자기 등장해 갑자기 사라졌다. 찰나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첫 만남부터 이런 식이라 성화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성화는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고, 그라는 장애물을 해결하는 것보다 조건으로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그가 어디서 무얼 하다 여기로 밀려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주인과 구두계약을 맺고 배낭 하나만 덜렁 매고 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여기 살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젖히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그와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성화는 눈동자만 굴렸다. 이미 저 멀리 내려가 버린 집주인을 다시 이 높은 곳으로 부르기 미안해 휴대폰을 꺼냈을 때, 그는 성화를 막아섰다. 나 여기 몰래 살고 있어. …그게 가능해? 그러니까 몰래지. 돈은 너한테 줄 테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주라. 주인아줌마 올 때는 나가 있을게. 성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는 성화의 답이 없는 그 짧은 시간을 동의라고 생각했는지 평상 위에 대자로 누웠다. 불편하고 이상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이었다.
성화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꺼내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나. 열대야에 방치되어 있던 아이스크림은 아까 먹었던 것보다 훨씬 녹아 있었다. 성화는 오늘 산 아이스크림이 막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잘 살다가 다시 갑자기 등장하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성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돌아올 것 같았고,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면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그를 좋은 사람으로 바꿨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구석에 버리고 성화는 화장실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이 묻어 끈적해진 손을 물로 씻어냈다. 분명 지워지는 건 아이스크림 얼룩인데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성화는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붙잡았다. 그의 이름은 아마도,
- 작가의 말
화성을 사랑한 우주와 우주를 살아가는 화성.
홍중이의 존재는 무엇이었을지 여러분들의 해석에 맡기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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